<특별기고>DJ와 우정의 정치
김명진 김대중재단 광주 서구 지회장


‘정치’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쌈박질만하는 극한 대립이 보기 싫다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급기야 무당층이 30%를 넘어섰다. 여야 거대 정당에 대한 피로감도 높다. 대결, 갈등, 분규, 네 탓 등과 연결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치 앞에 낯설게 우정이 붙었다.

‘우정과 정치.’ 뜨거운 얼음, 둥근 사각형처럼 일견 조화가 되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 조합이 최근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사용하기 시작해서 각종 그의 연설문에 등장하고 있다. 배경이 궁금했다.

과거 대결·네 탓 공방 탈피

차승세 광주시 정무특보에게 물었다.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장님이 말하는 우정의 정치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를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구상한 내용인데요. 독일이 연정을 잘해서 사회통합을 잘해가고, 그 결과로 유럽 국가 중에 강국이 되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우정의 정치는 과거 정치 셈법을 뛰어넘어 사상, 인종, 종교 등의 차별 없이 상식의 정치를 펼쳐 나아가고,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여야가 손을 잡고 힘과 지혜를 모으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결과 네 탓 공방보다는 상생과 덧셈, 동행의 정치를 하자는 취지로 읽혔다. 그런 취지가 맞는다면 우정의 정치는 포용의 정치로 쓸 수 있겠다. 포용의 정치는 다름의 존중이다. 구동존이(求同尊異)다. 같음을 추구하고 다름은 존중한다.

함정은 있다. 같음과 다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해법은 경청이다. 경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개 두 마리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가능하다. 두 마리 나쁜 개는 ‘선입견’과 ‘편견’이다.

경청은 상대의 마음속 의도를 응시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많은 민원인은 자신이 원하는 취지를 최적의 단어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정치인이나 단체장 등 공직자는 상대의 빗나간 단어 사용을 꼬투리 잡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집중과 응시가 필수적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필요하다.

정치야말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이다. 층간소음 분쟁, 교통사고 분쟁에도 남다른 조정력이 요구되는데 고도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계층, 사회단체, 이익집단, 결사체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해야 하는 정치야말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정치인 출신 단체장이 유리한 점이다.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치 영역을 넘볼 생각을 안 해야 한다. 십중팔구 오히려 갈등과 분규를 더 벌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상대를 적대시하고 인정하지 않아 벌어지는 국정 전반의 파열음과 퇴행을 국정 전반에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은 반짝 유명인을 영입하는 셀럽 정치가 횡행한다. 셀럽 정치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분야 전문성은 뛰어나도 정치인의 필수 자질인 소통과 조정 능력이 익숙하지 못해서이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소통, 타협과 포용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반짝 인기인이 속성으로 체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정의 정치 혹은 포용의 정치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한 대표적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용서와 화합의 정치, 반대편마저 껴안은 포용의 정치를 평생 강조했다. “춘향이의 한은 이 도령을 만나면 풀어진다. 변 사또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권 교체 후 지지층의 거센 반대에도 TK 출신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중앙정보부 출신 강인덕을 통일부 장관으로, 보수 성향의 이홍구를 주미대사로 임명하고 통합의 정치를 천명했다.

시민 손 잡고 가는 새 여정

또 소통의 정치를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결코 뛰지 말고 국민들이 결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민과 반 발짝 이상 떨어지면 국민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국민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마지막 승리는 국민의 손을 잡는 자의 것이라고 믿었다.

강기정 시장의 우정의 정치 천명이 상대를 존중하고 편 가르기를 넘어서 시민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새로운 여정의 선언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