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광주의 새로운 ‘문예광장’
정진탄 논설위원


가을의 센티함은 누구에게나 허용된다. 지독한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고 맞는 가을, 낙엽이 나뒹구는 거리가 더욱 정겹지 않을 수 없고 삶의 기쁨을 순간적으로나마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청명한 가을 하늘을 수놓는 문화예술 행사가 지자체마다, 예술단체마다 줄줄이 예고하고 있어 시민 흥을 북돋는다.

이런 문화예술 행사는 아무래도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서울·수도권에서 많이 열린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선보여 열광의 도가니였고 가을 분위기에 빠진 시민들이 매우 행복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특히 클래식 장르 공연이 실내가 아닌 드넓은 야외광장에서 펼쳐졌다는 점이 의미를 더했고 즐거움을 배가시켰다고 한다.

야외로 나온 클래식 공연

야외광장이라면 광주지역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구도심인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광장(5·18 민주광장)에는 계절적인 축제와 정기·비정기적인 페스티벌 등이 연이어 열리며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다음 달초 가을 대표 거리축제인 충장축제도 이곳에서 펼쳐지며 시민들의 ‘추심’을 한껏 달굴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은 혼란한 정국이 다가오면 각종 정치적 입장을 표출하는 마당이기도 해 엄숙함이 배어 있다. 민주광장이란 역사적 의미가 있는데다 이를 활용하는 단체들이 정치적 입장과 성명을 발표하는 곳으로 남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한마디로 정치성과 문화예술성이 혼재한 곳이다. 현재 이와 견줄 만한 야외광장이 광주지역에서 아직 개척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현대적 분위기로 보건대 압도하는 광장이 없는 게 아니다. 다름 아닌 매우 드넓고 거침이 없는 서구 상무지구 시청 앞 거리다.

시청 앞 공간은 시민들에게 휑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시청 건물 바로 앞에는 대규모 잔디광장이 자리하고 있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애초 시청을 짓고 잔디광장을 조성했을 때는 이처럼 조용하고 애매한 상황을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청 초기에 잔디광장에 심어진 나무들을 이용해 아름다운 장식 같은 것을 하고 간혹 작은 행사를 열었던 같은데 지금은 눈길을 끄는 이벤트가 거의 없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더욱 썰렁한 기운을 내뿜으며 시민들의 행정기관과의 심리적 거리감은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다. 다만 이 일대에서는 각종 행정에 대해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내걸고 확성기 등을 통해 시위하는 곳으로 변모하며 행인의 주목을 끈다.

넓은 시청 잔디광장과 인근 도로 일대를 이대로 놓아두는 것은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시민 관심을 더욱 제고하고 발길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필자는 이곳을 시민들의 자유로운 문화예술 공간, 즉 ‘문예광장’으로 조성해 화끈하고 멋진 공연 등의 행사를 개최했으면 한다.

수개월 전 보건의료노조가 대대적인 집회를 이곳 시청 앞 대로변에서 진행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노조원들은 단순히 도로 땅바닥에 앉아 시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화예술 행사를 열어 시위를 예열시키는 과정이 있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이 행사를 즐기는 것이었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 흘러나오고, 특히 성량이 좋은 오페라 가수의 공연이 이어질 때는 분위기가 금세 뜨거워졌다. 그때 느낀 점은 시청 앞 대로변, 그러니까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건물에서 KBS광주방송 건물까지 이어지는 수백 미터 길이의 도로를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문화예술 공연, 청년페스티벌 같은 것을 열면 대박이겠다는 것이었다.

시청 앞, 신도심 명소 조성

시청 앞 도로는 일직선으로 뻗어 거침이 없고, 주말과 휴일이면 교통이 비교적 한산하므로 차량을 통제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시청 뒤편으로는 멀찍이 도로가 있을 뿐, 주거단지나 빌딩 숲이 형성돼 있지 않아 소음 피해를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개방된 느낌이 강하다. 정기적으로 문화예술 행사, 축제를 열어보면 꽤나 매력적이겠다는 생각이다. 금남로와 충장로 등에서 열리는 행사와는 현격히 다른 시원한 공간감을 선사할 것이다.

더욱이 이 도로에서 대규모 행사가 펼쳐지면 시청 앞 잔디광장은 시민들에게 자연히 친숙해질 것이며 보조적인 활용 가치가 생길 것이다. 딱딱한 이미지의 행정기관과 시민의 보이지 않는 괴리감이 좁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이다.

요는 어떻게 이 같은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 준비하고 효율적으로 문예광장을 운영할 것인가라고 본다. 탁 트인 신도심에서 국내 문화예술인은 물론 외국인 공연, 오페라 같은 장르를 연쇄적으로 선보이면 시민들의 가슴은 뻥 뚫리는 쾌감을, 행복감을 맛볼 것으로 확신한다. 이곳 시청 앞 거리를 문예광장으로 조성해 유쾌한 공연을 자주 볼 수 있도록 행정 당국의 면밀한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