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역



이애경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천원역*과 만나네



노령역 지나 송정리역 다음 나주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나는 천원역에서 슬쩍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지폐는 애들도 시큰둥 한다는데



차창 밖 들녘은 천 원이면 뭐든 살 수 있다고



나풀나풀 유혹하고



뻥튀기처럼 부푼 행복이 숨어있을 것 같기도 한



가난한 나는 그만 이 역에서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밭뙈기나 부쳐 먹고



들녘 하늘에 매달린 노을이나 아침햇살 주워 먹으며



저 자라는 청보리처럼 살고 싶네



바람을 지집 삼아 옆구리에 끼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며 달빛이며를



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고 싶네



중략 -



* 호남선 간이역



제12회 진주가을문예 당선시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 만난 “천원역”을 모티프로 하여 서정적이고 낭만적 시 서사를 구축했다. “천원역”의 이미지는 천 원짜리 지폐를 연상시킨다. 그 천원의 소비는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비유로 착안해서 시의 주제를 살린 둣하다.

5행에서 “차창 밖 들녘은 천 원이면 뭐든 살 수 있다고/나풀나풀 유혹하고”에서 이러한 시적 증거를 받쳐주고 있다. 또한 가난한 화자는 천원을 가지고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자유를 누릴 때 “뻥튀기처럼 부푼 행복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7행부터는 목가적 삶에서 오는 ‘자유로운 행복’을 시적으로 캐 온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문명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릴 때 행복하게 살았던 농촌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이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동화되어 낭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화자의 심상이 “들녘 하늘에 매달린 노을이나 아침햇살 주워 먹으며”/ “청보리처럼 살고 싶네 / 바람을 지집 삼아 옆구리에 끼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며 달빛이며를/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고 싶네”에 시각적 이미지로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를 읽어갈 때 월리엄 예이츠의(1856-1989) 시 ‘이니스프리의 호수섬’이 떠올랐다.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 평화는 오리/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라빛 어리는 곳/저녁은 홍방울새 날개짓 가득한 곳 // 나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녹록치 않은 도시의 삶 속에서도 때로 이러한 서정과 낭만을 생각 속에 담고 살아간다면 파라다이스 같은 한 조각 행복이 우리 속에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시인·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