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 만세! 일본인은 물러가라! 코레아 우라!”

106번째 삼일절을 맞은 지난 1일 오전 10시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은 1919년 3월 1일 그날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고려인과 월곡동 주민, 학생 등 1,000여명이 한데 모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외침을 재현하며 잊혀서는 안 될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날 월곡 고려인문화관 앞은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러시아·우크라이나·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다 생계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은 서툰 한국말로, 한국인들은 힘찬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106년 전 선열들의 뜻를 기렸다.

특히, 푸른 눈을 가진 고려인 2세·3세들은 한 손에 직접 그린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홍인화 전 5·18 기록관장과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독립운동가로 분장해 6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1919년 당시 러시아에서 울려 퍼진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일제 헌병 역할은 고려인 2·3세 청소년들이 맡았다.

이들은 일제식 75㎝ 소총 모형을 들고 시민들을 향해 러시아어로 ‘손들어’라고 외쳤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6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은 더욱 크게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군의 위협에 맞섰다.

태극기를 든 시민들은 일본 헌병의 저지를 뚫고 고려인 둘레길을 따라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500m 구간을 행진하자 월곡시장 상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듯 밖으로 뛰쳐나와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내 3·1절이라는 생각에 한 상인은 시민 독립군을 향해 박수를 치고, 대한독립 만세를 따라 외치기도 했다.

고려인 마을 입구 앞에 선 시민들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출발한 대한독립군 40여 명과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한 시민과 함께 홍범도 공원으로 향했다.

홍범도 공원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을 주제로 3·1운동 106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국민의례 △3.1절 노래 제창 △독립선언서 낭독 △기념공연 △그날의 함성 만세삼창 △기념사진 순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김경림 고려인문화관 해설사의 선창으로 3·1절 노래를 제창했다. 서툰 한국말이지만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고려인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고려인 대학생 2명이 나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고려인 3세인 전남대학교 덴마리나(23·여) 학생과 호남대학교 김율랴(22·여) 학생은 서툰 한국어로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고 외쳤고 행사에 참석자들은 연신 박수를 치며 ‘코레아 우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고려인 3세 마르크군(14·카자흐스탄)은 “이번 3·1절 만세운동은 단순한 재현 행사를 넘어 고려인들에게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한국인들에게는 역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있는 자리였다”며 “요즘 세대들에게 3·1절은 그냥 쉬는 날로만 기억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려인과 한국인이 함께 미래를 향한 희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군 분장을 한 김영태씨(29·부천시)는 “역사 재현 활동을 통해 그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경험은 역사 교육에 큰 의미가 있다”며 “3·1혁명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사다. 1919년 우리 민족이 보여준 자주독립의 의지는 지금도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정신이다”고 강조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들은 한국인들과 같은 독립군 후손이다. 8·15 광복절과 마찬가지로 3·1운동을 매우 중요한 날로 생각하며 행사를 진행한다”며 “전국에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지만,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새기는 행사는 광주 고려인 마을이 유일하다.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고, 독립운동 조상들의 넋을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극복해낸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3·1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