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이 발이나 지팡이를 통해 촉감으로 위치와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보행 보조 시설이다.
그러나 광주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점자블록이 심하게 훼손되거나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고 있으며, 보행을 방해하는 각종 불법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광주 동구의 한 인도에 설치된 점자블록은 주변 차량들의 불법 주정차로 인해 잦은 압력을 받아 지반이 침하, 인근 보행로와 상당한 높이 차이를 보였다.
이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 보행자들까지 넘어질 위험에 노출시키는 심각한 상황이다.
동구 산수동 일대에서는 점자블록이 심하게 마모되거나 파손된 채 인도 위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한, 지산동의 한 횡단보도 앞 점자블록 위에는 폐타이어와 같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광주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내부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터미널 내부 점자블록 위에는 승객들을 위한 의자가 버젓이 설치돼 시각장애인들의 이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었다.
또한 의자에 앉은 승객들은 여행용 캐리어 등 짐을 무심하게 점자블록 위에 올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제대로 보수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된 채 파손되거나 마모된 점자블록, 그리고 그 위에 무단으로 적치된 불법 시설물과 쓰레기 등으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은 매일 불안감을 느끼며 길을 나서고 있다.
시각장애인 오병인씨는 “점자블록은 우리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길잡이와 같다”며 “하지만 파손되거나 엉뚱한 곳에 설치된 점자블록, 심지어 그 위에 놓인 장애물들은 우리를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이 없어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다”며 “조속히 점자블록을 정비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상·하반기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해 연 2회 점자블록 등 보수 공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 등 시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불편 사항 발생 시 사진과 함께 관할 구청에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사후 약방문식 처방이 아닌, 선제적인 점자블록 관리 시스템 구축과 함께 법을 지킬 수 있는 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공공시설,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의무마저 외면당한 현실 속에서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이동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무원부터 법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를 위한 법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강자의 편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며 “모든 시민들이 법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더 이상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묵살되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의날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420장애인철폐공동투쟁단’은 시민으로서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단체는 광주시청과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에서 장애인은 연대·평등·인권·정의에서도 ‘먼저’가 아니라 ‘나중’의 존재로 남는다”며 “광주시는 장애인의 권리를 시민의 권리로 존중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버스터미널에서 광주시청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금호고속과 광주시에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고, 광주시에는 건강권, 노동권 등 9가지 장애인 정책 요구안도 전달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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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동구 동명동 한 보행로 위에 설치된 점자블록이 파손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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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0장애인철폐공동투쟁단이 지난 18일 오전 서구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