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면 남쪽으로 난 창문 앞에 자주 서 있곤 한다. 그곳은 앞 동네 아파트 사람들의 밤 정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밤하늘과 들판,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의 화려한 불빛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은 가히 황금 분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조화로운 야경이다.

그곳에만 서면 왠지 별이 보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만, 희미하게 빛을 잃은 몇 개의 별을 보는 것이 고작이다. 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다가 지치면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 가로등과 네온사인 등의 인조 별들을 바라보곤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흰 불빛을 어림해 보았더니,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카시오페아 자리가 영락없다. 카시오페아는 북극성을 찾는데 목표가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북두칠성을 찾아보았다. 골목 안의 원형 가로등들을 점찍어 두었다. 제우스와 스파르타 왕비 ‘레디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쌍둥이자리와 여름날 남쪽 하늘의 파수꾼이기도 하고 사냥꾼 오리온을 죽인 전갈자리도 어림해 두었다. 황소자리, 게자리 등 하나하나를 맞춰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삶의 미궁에 흔들릴 때마다 마음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흐르던 은하수도 찾아보고 싶었다. 순간, 푸른 비단이라도 펼쳐놓은 듯한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파트 옆으로 비켜 보이는 들판이 불빛에 싸여 그야말로 물결이 넘실거리는 고즈넉한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시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일렬로 켜진 가로등들은 호수 옆을 유유히 흐르는 한 자락의 은하수였다.

그날부터 직녀를 향해 달려오는 견우의 힘찬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때로는 호수 한가운데에 사랑의 배를 둥둥 띄워 놓고 나직이 세레나데를 불러 보기도 했다. 창 앞에만 서면 우주를 덮고도 남을 만큼이나 고운 비단을 엮는 직녀가 되었다.

행복한 꿈의 밤은 아쉽게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신주택 단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서기 시작했다. 호수의 넓이가 반으로 줄어들더니 근래엔 2차 개발이 시작되면서 나머지 반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은하수는 빛을 잃어버렸고, 직녀를 찾아오는 견우의 힘찬 발걸음 소리도 멈춰버렸다. 마음의 배를 띄울 호수는 더더욱 없다. 늦은 밤이면 창 앞으로 향해 보지만 상실의 허탈감에 가슴이 시려올 뿐이다.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또렷하게 가슴을 채우고 있는데, 은하수의 실체는 자꾸만 곁을 떠나가고 있다. 손가락을 꼽으며 별을 헤아렸던 소녀의 세월과 함께 견우와 직녀 역시 몸과 마음이 쇠잔해 그리움의 열정마저 식어 버린 것일까. 은하수를 찾아야 한다. 아니 백발이 다하도록 꾸어야 할 꿈을 찾아야 한다.

창밖의 꿈들이 투명하게 광채를 낼 수 있도록 오늘도 말갛게 말갛게 마음의 창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