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우리는 왜 달빛철도를 타야 하는가
정진탄 논설위원


저 우주 어딘가를 자유롭게 달린다는 ‘은하철도 999’ TV프로그램을 보고 얼마나 상상의 날개를 폈던지, 이 애니메이션을 7080세대, 586들은 어릴 적 한번쯤 봤음직하다. 은하계를 날아가는 열차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리며 미래 세계의 스토리를 담았다. 열차는 항공기 등에서 느끼지 못하는 왠지 모를 낭만을 발산하는데 우주에서 그런다면야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직은 우리가 열차를 타고 우주를 달릴 기술은 개발하지 못했으나 유·무인 탐사선을 끊임없이 보내 우주를 개척하고 길을 내면 언젠가는 실현될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이보다 훨씬 먼저 우리에겐 내야 할 철길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달빛철도로 은하계를 달리듯 달빛 속을 달린다는 뜻이 아니라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 사이를 오간다는 의미에서 명명됐다. 두 광역지자체를 오가는 고속도로(일명 88고속도로)는 40년 전에 건설돼 소요시간이 산업화 시대에나 맞을 법한 3시간 안팎이다. 이제 이동 편리함과 신속성, 즐거움을 이 도로가 채워줄 수 없다. 이런 욕구를 해소하게 되는 달빛철도는 1시간 30분 이내에 광주~대구를 주파하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다. 당일 오전에 광주를 출발해 대구에서 점심을 즐기고 여유를 부리다 저녁 열차에 몸을 실고 돌아올 수 있다.

중앙·지방 종적 구조 타파

얼마 전 대구 유력 일간지 논설위원이 오는 4월 총선과 관련해 쓴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여권 텃밭인 TK(대구·경북)의 애환을 절절히 풀어내는 글을 읽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글 내용은 여권의 대구발전 전략이 잘 세워지지 않거나 제공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광주도 야권 텃밭으로서 유사한 아픔이 있기에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달빛철도가 깔렸다면 당장이라도 떠나 그 논설위원과 점심을 같이하고 싶었다.

한국 발전사는 남북으로 연결된, 종축의 중앙집권적 기반 위에서 전개됐다. 중앙(서울)과 지방(호남·영남)이란 구도로, 유행가 가사 후렴구처럼 ‘위, 아래’가 반복되는 형태였다. 국가 권력뿐 아니라 의식구조도 이에 따라 굳어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양 지방인 호남과 영남의 발전 정도마저 밸런스를 맞추지 못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불균형이 드러나 시정되기 마련이고, 동토는 해빙되며, 길은 열리는 법이다. 지금 지역균형발전, 지방시대를 말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30년 가까이 숙원사업이 된 광주와 대구의 달빛철도는 이 같은 시대정신의 기반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헌정 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이 뜻을 모아 달빛철도 건설 특별법을 공동 발의한 것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대세에 따른 것이다.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 전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승인이 이뤄지면 후속 절차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철도 건설에 드는 막대한 사업비 투입 탓에 예비타당성(경제성) 조사를 해야 한다며 법안 통과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결국에는 놓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기재부는 한국 새 역사 창조 과정의 ‘죄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동서 대화합과 수평적 교류의 장을 여는 길을 막아서야 될 일인가. 달빛철도는 광역지자체 6곳, 기초지자체 10곳을 경유하며 1,000만명이 넘는 인구지역을 넘나드는 아주 특별한 열차의 길이다. 중앙과 지방이 아니라 지방에서 지방으로, 위·아래의 종축이 아니라 왼쪽·오른쪽의 횡축, 말하자면 동서연결의 ‘한국형 실크로드’를 여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정한 지방시대 여는 효자

우리는 일찍이 중앙과 지방, 위·아래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마음이 옆으로 퍼지지 못하는 심각한 왜곡현상을 겪었다. 더욱이 삿된 정치 무리에 의해 영호남 지역감정이 조장돼 마음은 더욱 더 멀어졌다. 지금도 이번 총선을 맞아 달빛철도 건설이 확정되면 중앙 중심의 서울·수도권에서 표가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질긴 정치미몽이다. 이런 정치적 논리, 당장의 경제성에 눈이 어두워 달빛철도를 건설하지 못하면 한국 미래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철도가 건설되고 이동 플랫폼이 조성되면 왜 발길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달빛철도는 미래 낭만열차로 16개 지자체의 새로운 여정을 연결해주는 화합의 철길이다. 이 철도는 아직 우리가 가보지 않는 길이지만 서울·수도권 일극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지방시대 효자철도이며 동서지역, 영호남인의 마음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는 일대 교통혁명 수단이 될 것이다. 다음달 8일까지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달빛철도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이다. 설혹 무산되더라도 차기 국회는 기필코 법 제정을 달성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예정대로 사업 추진 과정이 잘 진행돼 2030년 달빛철도가 달린다면 달빛동맹은 단단해질 것이며 국민적 관광지도는 물론, 마음의 횡적 확장으로 진정한 지방시대를 맞을 것이다. 지방시대는 구호로 여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