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수도권 일극 무너뜨리는 지역동맹
정진탄 논설위원


바람으로 왔다 바람으로 가는 정치권 선거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힘을 주로 쓰는 행정은 시민의 안녕을 상대적으로 더 담보한다고 한다면 이견이 있을까. 현 정치판을 보면 이런 시각이 잘못된 것 같지 않다. 이름도 다 외우기 어려운 정당이 언제 명멸할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 있다. 행정이라고 무슨 바람이 없겠는가만 정치적 허무맹랑함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긍정적 기대감을 갖는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태풍이 형성되고 있음을 현자는 보고 있을 것이다.

고대 국가에서 큰 세력에 대항해 힘을 모으는 동맹이 있었던 것은 주지하는 바인데(예를 들면 고구려 대항 ‘나제동맹’), 양태가 바뀌었을 뿐 주도권·지배력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움직임이 현대에도 존재한다. 어떤 강대국도 세력을 잃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전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팍스 아메리카나에 이어 팍스 시니카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다. 국내를 보더라도 힘의 재편이 먼 얘기만은 아니다. ‘팍스 서울리카’(Pax Seoulica), 즉 서울·수도권 지배체제를 뒤엎을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것이다.

‘팍스 서울리카’ 전복 새 기운

거북이걸음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물적 성숙으로 일시에 닥칠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대자연의 이변, 코로나 팬데믹 사태처럼 갑작스럽게 역사적 변수를 생성시킬 수 있다. 광주와 대구는 병상연대, 즉 대구지역 코로나 환자가 병상 부족으로 광주로 이동해 치료 받으면서 과거와 차원이 다른 연대감을 키웠다. 이후 병상연대는 달빛동맹(현대판 나제동맹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을 더욱 굳건히 하며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2013년 체결된 달빛동맹이 10여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로 발전했느냐 하면 군공항 이전 특별법 동시 제정에 이어 달빛철도 건설 추진에 성공했으며, 이제는 광주와 대구 사이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해 미래 성장 동력을 조성하자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광주와 대구에 걸친 지자체 16곳이 포함된 이른바 ‘남부 거대경제권’을 구축해 서울·수도권 일극체제, 즉 팍스 서울리카의 망국병을 고치자는 의지다. 경제와 문화 교류가 활성화하며 동서 새 역사를 창조하는 가슴 벅찬 비전이다. 2038년 광주·대구의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협력도 그런 차원이고 실제 공동유치가 이뤄지면 가속도가 괄목할 것이다.

광주와 대구 교류는 그간 상대방에게 동토로 여겨진 지역을 왕래한다는 수준의 함의가 아니다. 두 곳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이전에 없던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보게 된다. 각각 진보와 보수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두 지역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일이 아닌가. 광주 시민이 대구로 대거 이동해 지내거나 살고, 반대의 경우가 성립되면 대한민국 세력 판도는 바뀌게 돼 있다.

이런 흐름은 하나가 아닌데, 동시에 물결을 일으킨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남부권 광역관광개발’이란 초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남도를 비롯해 광주시, 부산시, 울산시, 경남도가 힘을 모아 천혜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올해부터 2033년까지 K-관광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사업에는 3조원 이상이 투입된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여수와 남해, 그리고 부산 등이 조화를 이루는 이 사업은 팍스 서울리카를 크게 위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해안 항구도시들의 결합을 ‘항구동맹’이라고 칭하면 어떨까. 지난해 하반기 문화관광체육부와 이들 지자체가 참여해 지중해를 능가하는 해양문화를 선보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벌써 전남도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세부사업을 전개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년 내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항구동맹은 큰 획을 긋게 된다.

상상해보라. 내륙 도시 광주와 대구가 철도로 연결되고 여수에서 부산까지 항구로 연결되는 미래를.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서울·수도권의 견고한 성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기를 쓰고 서울·수도권이 메가폴리스를 구축하기 위해 혈안인지 모르겠으나 역사적인 부침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달빛동맹과 항구동맹이 새 시대의 여명을 앞당기고 있다. 이들 동맹은 현재 제2의 수도권 형성까지 넘보지만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두 동맹의 힘으로 남부지역 어딘가에 천도가 이뤄질지를.

호영남인 역사적 의무·책임

물론 가야 할 길은 험하고 멀다. 그러나 오던 속도보다는 전진하는 속도가 힘을 얻어 목적지를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갈 수 있다. 또 그렇게 가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며 정신이라고 본다. 다음달 총선에 맞춰 정치인들이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최소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정치인이라면 금배지 하나 다는 것에 연연하지 말지어다. 국가와 민족의 큰 미래를 여는 거시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담대하고 미래의 기운을 지닌 영웅은 광주와 전남, 국가의 운명을 바꿀 흐름을 꿰뚫고 회오리를 일으킬 것이다. 그런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인물을 키우고 지지해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광주와 전남, 저 영남 지역민에게 동시에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