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와 문화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영어사전에 우리의 말이 그대로 등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김치(kimchi)나 불고기(bulgogi), 비빔밥(bibimbap)과 같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은 물론이고 체벌(chaebol)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도 있습니다. 그 중 'ggonda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의 설명을 보면 '한국어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이 항상 옳다고 여기는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번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16년 만에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 준 안세영 선수의 발언과 이에 대한 관련 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이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안 선수의 발언을 통하여 체육계가 우리나라의 위상이 성장하는 것에 맞추어 따라 함께 발전하지 못하고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안 선수의 인터뷰는 체육계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선수의 노력이 아니라 협회 회장님의 후원이나 감독님이나 코치님의 도움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소감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던 협회의 운영과 국가대표 선발 지원 등에 대한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안 선수의 발언내용대로 부상을 입은 선수에게 출전을 강요하였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선수보호책이 있었는지 여부의 진위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해당 협회의 회장이나 체육회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의 발언을 들어보면 가관입니다. 대한체육회장은 "나름대로 평가를 해본 결과 우리 안세영 선수가 뭔가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데, 표현 방법이 좀 서투르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하고 있고, 배드민턴 협회장은 "갈등은 없었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확인해보겠다"라고 안 선수의 발언 내용을 전혀 사실이 아닌 양 부인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기쁨을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아무런 이유 없이 할리 없습니다. 이런 비판적인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금메달을 따야 했고 그래서 투혼을 불살라야 했던 안선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만약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이런 발언을 해봐야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제 스무 살이 갓 넘은 젊은 선수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응어리가 있어 이런 결심을 하였을까 생각해봅니다.

한 협회를 책임지는 수장이라면 안 선수의 발언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자신이 수장인 협회의 선수를 손흥민이나 김연아와 비교하면서 그런 대우를 기대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발언은 실소를 넘어 분노까지 불러옵니다. 안 선수는 몸이 성한 곳이 하나 없을 정도이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채워 세계 일등의 자리에 오른 선수이지 그저 나이 어린 경솔한 젊은이가 아닙니다. 협회의 장이라는 사람들이 젊은 선수의 애타는 마음을 이렇듯 어린사람의 치기어린 경솔한 발언으로 매도한다면 발전이 아닌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비단 체육회뿐만이 아닙니다.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나이라는 허울에 가려 그들의 정당한 의견이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이번에 올림픽을 치룬 마크롱 프랑스대통령은 마흔 살에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 공화당의 부통령후보인 밴스도 올해 마흔 살입니다. 세계의 추세가 이럼에도 우리만 아직도 여전히 나이로 어른 흉내를 내고 젊은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어른은 나이만 많아서가 아니라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포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만 어른입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사실로 위계질서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통인양 곡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은 세계 사상사에서도 보기 드문 멋들어진 학문적인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기대승의 나이는 32세, 이황은 59세였습니다. 나이는 물론 지위까지 기대승은 이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났지만 이황과 기대승은 8년 동안 9번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상대방과 주고받았습니다.

이황은 '세상의 진리는 무궁무진하고 알 수 없는데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는 태도를 잃지 않고 어린 초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퇴계 선생의 품격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반의반이라도 아니 흉내라도 내보려고 시늉이라도 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