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고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게 나타난다는 백로를 앞둔 가운데 불볕더위도 끝자락을 내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침저녁 기운으로 느껴진다.

유독 습도가 높았던 올여름, 청명한 가을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곧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서 여름을 지나는 거라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맥이 풀리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폭서를 견딘다는 것은 폭서가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쾌적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기대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예측하는 감정으로 구체성을 띠는 반면, 희망은 상황에 대한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상태로, 불명확한 특성을 보이며, 무수히 많은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등장할 만큼 인류에게는 중요한 가치를 지녀왔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희망과 기대를 욕심이라고 표현한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희망과 기대라는 개념을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청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과 기대를 욕심으로 해석하는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말이다.

행복에 관한 무수한 연구들을 통해서 밝혀진 것 중 하나가 행복 변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이 행복 관련 의도적 활동이나 습관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손야 루브멀스키에 따르면, 행복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행복 파이)를 연구한 결과 '유전으로 결정된 행복의 기준점', '행복 관련 상황 요인', '행복 관련 의도적 활동이나 습관'이 행복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경험하는 행복에는 긍정적 정서, 긍정성이 기본이 된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져 왔으며, 긍정성의 키워드 중 대표적 개념이 바로 희망이기도 하다.

또한, 희망심리학의 저자인 릭 스나이더 박사의 연구에서도 희망은 실제적 힘을 발휘함이 밝혀진 바 있다.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향후 대학 생활을 적응도와 졸업 후 성취를 예측하기 위해 입학 전 학업 점수(SAT)와 희망의 크기를 비교한 결과, 희망의 크기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희망은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신념이 있을 때 생긴다고 하였다.

희망과 기대를 욕심이라고 해석하는 청년의 마음은 N포세대라는 말처럼 희망과 기대가 사라져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바람과 또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의 부재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위기가 닥칠 때 희망은 저절로 생겨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의 주장이 떠올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노력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부닥뜨릴지 모르는 상황, 즉 삶의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삶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심리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치료에 대한 기대는 15% 변량을 차지한다고 밝혀진 바 있기도 하다. 마치 음식이 몸을 유지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기대와 희망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도 같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맞이를 준비하는 요즈음, 현재 자신의 삶과 주변에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신념을 갖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천을 하고 있는지도 질문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2024년 가을, 당신의 희망과 기대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