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목포 유달산 자락 근대역사관을 찾았다. 내부에는 일본 식민시대 시작의 아픔과 이에 저항하는 목포시민들의 투혼을 보여주는 많은 자료가 있다. 가슴이 먹먹하다. 밖으로 나와 역사관 앞에 선다. 멀리 목포항이 보인다. 개항과 동시에 밀려들던 일본의 수탈에도 싸우고 견디어 내던 목포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이한 게 있다. 역사관 뒤편에 일본군 방공호다. 85미터 깊은 동굴이다. 2차 대전 막바지에 몰린 일본군이 미군의 공중폭격과 상륙작전에 대비하여 만든 땅굴이다. 이곳에 일본군이 틀어박히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식민시대를 견디었고 결국 이겨냈다. 그리고 지금, OECD 경제순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이런 뿌듯함 덕분인가, 반나절이 넘는 도보 강행군에도 식당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가뿐하다. 더구나 오늘 저녁 메뉴는 목포 명물, 낙지다. 낙지를 칼로 탕탕 내려쳐서 잘게 만든 후 참기름과 통깨를 섞어 만든 게 '낙지탕탕이'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에 술술 잘도 넘어간다. 힘든 농사일로 주저앉은 소에게 낙지 한 마리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할 만큼 낙지는 스태미나 음식이다. 실제로 낙지의 타우린을 먹인 쥐의 수명이 10~12% 늘어났다. 가히 갯벌 속의 인삼이라 할 만 하다. 그런 탕탕이를 앞에 놓고 건배를 외친다.

좋다. 하지만, 자리보전이 아닌, 진정한 건강 100세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암이다. 국내 성인 사망원인 1위다. 가족 세 명 중 한 명은 60세까지 한번은 암을 만난다. 노인 사망원인 25%가 암이다. 지구 동물과 함께 탄생한 암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진화 경쟁에서 뭔가 유리한 점이 있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암과의 전쟁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조기 위암은 완치율이 95%까지 올라섰다. 암 치료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발·전이된 경우다. 항암제에 죽지 않고 암세포가 자라나면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재발·전이만 막아도 암 생존율은 쭈욱 올라간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신개념 항암치료제를 승인했다. '종양침윤림프구' 치료제다. 쉽게 말해보자. 암 덩어리(종양)에 들어갔다 나온(침윤) 면역세포(림프구)를 사용하는 치료법이다. 이 신개념 치료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목포 유달산 자락에 있던 동굴이 생각났다. 동굴은 일본군만 숨는 게 아니라 암세포도 그 속에 자리 잡는다. 인체의 95% 암은 고형암, 즉 덩어리를 만든다.

암세포는 덩어리, 즉 암 동굴에 숨어있는 셈이다. 큰 암 덩어리는 수술로 떼어내지만, 눈에도 안 보이는 작은 알갱이, 즉 동굴 속 암세포는 면역세포가 찾아 들어가서 하나하나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암 동굴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가서도 면역세포가 비실비실해져서 죽어 나자빠진다. 연구자들이 찾아낸 건 그 험준한 암 동굴 속 싸움에서 살아나온 면역세포다. 최고 '싸움꾼'이다.

실제 과정은 이렇다. 암 환자 몸에서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낸다. 그 덩어리에서 살아 돌아온 이놈들을 골라내서 실험실에서 수백만 배로 수를 불린다. 이를 다시 환자 몸에 주사한다. 그럼 어떻게 될까. 한번 싸워 이겨본 '싸움꾼들'이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동굴 속 암세포를 완전히 끝내버린다. 이 치료제는 따라서, 개인맞춤형 재발·전이 치료제다.

첨단과학은 이제 암의 천적인 면역세포들을 훈련해 암을 치료하려 한다. 완치 희망을 가지자. 무엇보다 면역을 튼튼하게 만들자. 목포 낙지탕탕이 한 접시 놓고, 지인들과 건배를 자주 하자. 건배로 스트레스를 낮추고, 탕탕이로 면역을 튼튼하게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