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전라도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하나 손꼽으라면 나는 단연 부사 '무담시'다. 그야말로 '무담시'라는 부사가 '무담시' 좋다. 그런 '무담시'를 검색하면 '괜히'의 방언으로 나온다. 하지만 '괜히'는 '괜히 건드렸다'는 말이 보여주듯이 그럴 이유나 실속이 없이 과거 어떤 사태를 일으켰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 반면에 '무담시'엔 '무담시 서럽다'는 관용어구처럼 어떤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순수한 마음의 흐름이 스며있다.

예컨대 언제부턴가 '빛고을'이라는 부르는 '광주'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향수와 애정이 그렇다. 단적으로 그것은 필시 80년 5월 이후 광주가 내세운 '투쟁과 항쟁의 도시'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광주가 무슨 '평화와 인권의 도시'이라던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주민등록상 서울 시민이 된지 스무 해 가까워옴에도 여전히 내가 광주시민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서일까. 내가 나고 자란 고향집과 더불어 늙으신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광주가 '무담시' 그립고, 아쉬울 따름이다. 별다른 계기나 이유 없이 그 고유명사만 들어도 반갑고 또 눈물겹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원인과 결과, 이유나 근거와 같은 물리적 법칙이나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 대부분의 경우 주관적인 방향설정이나 목표의식에 따라 그렇게 보일 뿐, 마치 내가 누군가를 '무담시' 그리워하는 것처럼 특별히 인과관계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어느 시인이 "왜 사냐건/웃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굳이 스스로의 존재이유나 생의 목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한 대목에서 난 새삼 그걸 확인한다. 거기서 "살아남은 증언자들" 대다수가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도청에) 남았느냐는 질문"에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니까 80년 5월 항쟁에 광주시민들이 참여한 것은 딱히 무슨 특별한 역사의식이나 각별한 시대정신 때문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웃의 불행을 기꺼이 자기의 것으로 느끼고 공유하려 했던 순수하고 자발적인 발로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듯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싶다거나 때로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의 모험에 나서는 것은 결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나 개인적인 열정 때문만이 아니다. 굳이 따져 들어가자면, 그런 시도 자체가 주된 이유 아닌 이유라고나 할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어떤 구구한 이유나 설명의 필요 없이 그냥 그 자체로 존속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들 삶처럼 그 자체로 충분하기에 어떤 그럴듯한 이유나 궁극적인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무담시'라는 전라도 말에서 그걸 느낀다. 특히 그 속에서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풍요롭고 다채로운 현실을 본다. 또 역사적이면서도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모호하고 파편적인 삶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무엇보다도 무등산처럼 가장 높은 방식으로 그 '선한 심장'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마음의 미묘한 흐름을 읽어낸다.

자 그러니, 말 그대로 거기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모든 광주시민들이 공감하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시정(市政) 목표인 '무담시 광주' 어떤가. 왠지 모를 중압감이 아니라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찾아 깃들고 싶은 '미래의 광주'를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