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아름다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18세기 프랑스 정치가 탈레랑(Talleyrand)이 커피에 대해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이 얼마나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매력이 잘 드러나 있단 말인가. 아침 찬 공기가 상쾌한 지금 커피향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커피만큼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음료가 있을까. 커피를 사랑한 음악계 3B, 3인방(브람스·베토벤·바흐) 중 바흐(Bach)는 직접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 BWV 211)를 작곡했다. ‘커피 칸타타’. 모 회사 음료 이름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바흐의 칸타타 중, 커피에 관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커피 칸타타’이야기다.

17세기 초반 아라비아에서부터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지기 시작한 이후 커피하우스, 카페가 유행했다. 커피가 불임 원인이라며 여성들에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등 커피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사람들과 신세대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커피 매니아였던 바흐는 당시 커피에 대한 시각을 ‘커피 칸타타’를 통해 풍자했다.

하루에 커피를 세 번씩 마시지 않으면 죽을것 같다는 딸 리스헨(Lieschen)이 매우 못마땅한 아버지 쉬렌드리안(Schlendrian)은 커피를 끊지 않으면 결혼도 시키지 않겠다는 협박을 한다. 딸 리스헨은 커피를 끊되 커피를 좋아하는 신랑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곡이다. 한마디로 커피 광고 음악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이들 못지않게 커피를 사랑한 독특한 예술가가 있다. 작가 이상(理想)의 커피 다방(茶房) 사랑은 유명하다. 집을 팔아 종로1가에 ‘제비’를 개업했고 이후 인사동에 ‘쓰루(학)’를 인수해 운영했다. 다시 종로 1가에 ‘69다방’을 열었으나 파격적이던 가게 이름이 문제가 돼 접게 됐다. 이어 ‘무기’라는 카페를 준비했으나 역시 기울어진 경제력과 지병으로 무산됐다. 이상의 다방은 일제시대 지식인들 교류의 장이자 작은 살롱이면서 그의 문학적 산실이었다.

사실 17세기 유럽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이후 카페는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공간이었다. 카페는 유럽의 상인들과 학자, 정치가, 시인, 평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서 정보의 발원지였다. 프랑스에서는 왕정에 불만이 있던 이들이 카페에 모여 논쟁하면서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정치와 개혁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카페는 만남이 이뤄지는 사교의 중심지이면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 발원지로 역할이 확장됐다. 현대인들에게도 카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대사회에서 카페는 도시경관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상업공간 중 하나다. 강릉은 유명 바리스타들이 조용했던 안목해변에 정착하면서 카페거리가 형성돼 지역의 중요한 로컬자원으로 유명해진 지 오래다. 광주 동구 동명동도 마찬가지. 주택가에 카페가 밀집되기 시작하면서 동리단길로 불리는 ‘카페거리’가 형성됐다. 점차 동명동만의 로컬콘텐츠로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길 위에서 올해 4번째 ‘동명커피산책’이 오는 26일 토요일 열린다. ‘핸드드립 커피 어워드’, ‘플리마켓’, ‘인문학 강연’, ‘로고송 페스티벌’, ‘버스킹’ 등 커피, 인문, 음악 분야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커피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바야흐로, 커피예찬의 시대에, 토요일(10월 26일)은, 동명동이라는 로컬 공간과 사람들, 동명동만의 시간이 존재하는 커피예찬 공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번 주 토요일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 모두 ‘와인 보다 달콤하고 악마의 유혹처럼 매혹적인 커피향이 가득한 동명동 카페거리로 커피산책’ 나가보면 어떨까. 그곳에서 바흐 ‘커피 칸타타’의 위트도 함께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커피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힌가! 천번의 키스보다 더 사랑스러우며 와인 보다도 달콤하다네.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제발 커피 한 잔을 따라줘요!” - 바흐 커피 칸타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