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은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의료취약지이다.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는 1.7명으로 전국 평균보다 부족하며, 22개 시군 중 17개소가 응급의료 취약지역이다. 지역 의료격차, 의료 공백, 원정 진료,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부족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전남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0여 년간 의대 신설을 정부에 요구하며 국립의대 설립의 당위성을 알렸으며, 필자는 장애인들과 함께 국립의대 유치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 등에 참석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전남 방문에서 “국립 의대 문제는 어느 대학에 할 것인지 전남도가 정해서 알려 주면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국립의대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국무총리도 “의대가 없는 광역단체인 전남의 경우 지역 내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 절차에 따라 신청이 이루어지면 정부가 신속히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회답했다. 정부가 도민들의 국립의대 설립에 대한 염원을 인정해주고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서 간의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의견 수렴은커녕 의대 설립 자체가 무산 위기에 처해 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순천대를 중심으로 한 동부권과 목포대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 간의 치열한 의대 유치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도 사활을 걸고 싸우며, 뚜렷한 대안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계속하고 있다. 필자는 대통령과의 민생토론회를 보면서 이런 모습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지혜로운 우리 도민이 이 위기를 헤쳐나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노력이 지역 이기주의로 인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다.

전남에 국립의과대학 유치는 확정된 것이 없다. 동서가 싸울수록 전남의 국립의대 유치는 멀어질 것이다. 국립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광역단체는 많다. 전남 목포대· 순천대 외에도 경남 창원대, 전북 군산대, 인천 인천대, 경기 대진대·신한대, 대전카이스트, 충남 공주대, 경북 안동대·포스텍 등이 의대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지역 대학과 연계해 의대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 국회에서는 각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의 의료서비스 향상과 필수의료 확보를 위해 의대 설립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등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남은 동서로 갈라져 대안 없이 지역 이기주의만 판을 치고 있다.

전남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으로,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섬들을 지닌 축복받은 고장이다. 선조들은 의로움과 멋의 전통을 세워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연히 일어나 백성과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 정치인들은 예전의 의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정치는 승자가 전부 독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패자에게도 어느 정도 보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간 비방만 계속된다면 차려진 밥상은 엎어질 것이다.

후손들에게 의대 없는 전남을 물려줄 것인가? 전남은 의료 낙후지역이라는 꼬리표를 계속 달고 싶은가? 도민 모두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살기 좋은 전남을 원한다. 전남에 의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전남의 의대 유치를 위해서는 정해진 룰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비방이 아닌 대안을 찾아야 한다. 도민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목포대와 순천대는 반드시 공모에 참여해야 한다. 공모 과정에서 협상하고 의견을 모아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면 된다.

전남도는 “공모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며 지역 내 의료체계 완결성 구축 등 4가지 원칙을 세워 공모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공모에 활용되는 지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모 방식을 불신하며 불참 의사를 밝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의대 신설 대학을 추천할 권한을 전남도에 넘겼다. 전남도는 공정한 룰을 만들고 공모 불참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도민이 원하는 것은 전남에 설립될 국립의대이지 특정 지역의 의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정치인들은 대립을 자제하고 갈등을 해소하며 해결책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도민의 화합된 목소리와 단합된 힘이 전남에 국립의대를 설립하는 강력한 무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남의 발전과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를 위해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깊이 고민하고, 어렵사리 찾아온 국립의대 신설의 기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은 국립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전남인 모두가 원팀이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