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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량만 방조제에서본 다전마을 전경. 마을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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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고내마을 돌담길. 옛 조양현의 소재지답게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
이순신이 연안을 따라 도착한 곳은 고내(庫內)마을이다.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다.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에 속한다. 당시 조양현 소재지다. 757년 설치된 조양현은 1441년까지 유지됐다. 여기엔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 외성은 석축 683m, 높이 2m 규모로 우물과 군량창고가 있었다. 현을 다스리는 관아도 있었다. 일대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군량창고인 조양창은 마을 뒷산에 있었다.
●보성군 고내마을 당도…봉인된 군량미 확보 ‘환호’
이순신이 도착한 조양창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청야책에 의해 불태워진 지금까지의 창고와는 달랐다. “곡식이 그대로 있습니다, 장군님. 봉인도 뜯지 않았사옵니다.”
이순신은 봉인된 군량미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가마니가 새끼줄에 그대로 묶여 있었다. 긴장하고 지켜보던 병사들도 환호했다.
조양창에서 내려온 이순신은 김안도의 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아침. 이순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이런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는 게 자칫 다른 군관들에게 짐이 될까 우려됐다. 이순신은 배흥립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얘기해 주며, 하루 더 머물자고 했다. 이순신이 이틀 묵은 김안도의 집은 현재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 수 없다.
몸이 성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은 계속 머물고 있을 수 없었다. 해안의 출구를 확보하는 게 시급했다. 이순신은 군사를 불러 모아 격려하고 행군을 시작했다. 다전마을로 향했다. 고내에서 오봉산 자락을 따라가는 길이다. 당시엔 바다가 산자락 바로 앞까지 펼쳐졌다. 바다에 큰 포구도 많았다. 일제강점 때 방조제를 쌓으면서, 바다가 막히고 포구도 사라졌다.
이순신이 다전마을에 들른 것은 영해부사 양산항의 집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양산항(양산원)은 학포 양팽손의 손자로 기묘명현의 후손이다. 이순신과는 대대로 정을 나눠온 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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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고내마을 돌담길. 옛 조양현의 소재지답게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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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항 집 터.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이 군량미를 많이 얻은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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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조양창 터. 이순신이 많은 군량미를 손에 넣은 곳이다. 고내마을 뒷산에 있다. |
이순신이 양산항 집에 이르렀으나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피난 간 듯했다. 집안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식량을 거두도록 했다. 조양창과 양산항 집에서 식량을 구한 이순신은 군량미 걱정을 떨칠 수 있었다. 이순신이 식량을 많이 구한 곳이 득량만 일대다. 이곳 지명이 ‘득량(得糧)’으로 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이순신이 양산항 집에 머물고 있을 때다. 저녁나절에 군관 송희립과 최대성이 찾아왔다. 고흥 과역 출신 송희립은 이순신을 최측근에서 보좌한 장수다. 최대성이 보성 일대의 전시 상황과 일본군 동태를 보고했다.
이순신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연안 포구와 선소, 석대, 회령으로 전령을 보냈다. 보성 관원과 선소 군관들에게 소집에 응하라는 전령도 보냈다. 보성군수가 전령을 받고 먼저 들어왔다.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소계남도 합류했다. 첩보를 수집하러 간 군관들도 속속 돌아왔다. 경상우수사 배설과 다른 장수들 소재도 파악해 보고했다. 칠천량에서 살아남은 조선함대의 이동상황도 소상히 전했다. 이순신은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이순신이 머문 양산항 집이 다전마을에 있다. 다전마을은 제주 양씨 집성촌이다. 산자락에 차밭이 많아 ‘다전(茶田)’으로 이름 지어졌다. 이순신은 양산항 집에서 충청도순변사를 지낸 윤선각에게 장계 일곱 통을 써주었다. 이순신은 여수와 하동 쪽에도 전령을 보냈다.
일본군의 움직임과 주변 상황을 다 파악한 이순신은 또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보성이다. 추석을 하루 앞둔 8월 14일, 날씨도 궂었다.
다전마을에서 보성으로 가려면 기러기재(안치, 雁峙)를 넘어야 한다. 기러기재는 큰 고개다. 고개에서 내려다보이는 군두마을 일대가 모의장군 최대성의 격전지다. 최대성, 전방삭이 이끈 해상의병의 안치전투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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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성을 모신 보성 충절사. 최대성은 보성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이순신에 전시 상황과 일본군 동태를 수시 보고했다. |
기러기재를 넘은 이순신이 보성에서 찾은 곳은 보성군청 열선루(列仙樓)다. 열선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누각이다. 당시 보성읍성은 낮은 구릉을 연결시켜 쌓은 평산성으로 둘레 895m, 높이 2.7m였다. 읍성은 지금의 보성군청과 보성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현재 이순신 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순신은 열선루에서 보성군수와 군관을 불렀다. 나주목사와 어사 임몽정에게도 편지를 썼다. 궂은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순신의 마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일본군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사방이 을씨년스러웠다.
이순신은 애써 잠을 청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밤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도 귓전에 가까이 닿았다. 이순신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늦은 오후에 그쳤다. 하늘도 맑게 갰다.
이순신은 열선루로 찾아온 선전관 박천봉을 만났다. 박천봉은 임금의 유지를 갖고 와 전했다. 이순신은 임금의 유지를 받들고 바로 펼쳤다.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 합류하라!’ 수군 철폐령이었다. 수군을 폐지하고, 권율 도원수를 도와 뭍에서 싸우라는 것이었다. 소수의 수군으로는 일본군을 막아내지 못하리라 여긴 임금이 내린 명령이었다.
조정에서는 전시 업무를 맡아보던 관아(官衙)가 파멸된 이후 일본군의 진격을 걱정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바람을 타고 서해로 향하면 서해안은 물론 충청과 경기까지 유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본군과 일전을 준비하며 모은 병사가 몇 명인데? 나를 믿고 따라준 군사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동안 확보한 군량미는 또 얼마인데? 지금까지 해온 수군 재건 노력과 함께 전폭적으로 성원해 준 호남 백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