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치료제인 리팜피신(약물대사 유도제)을 복용하는 사람이 피임제를 병용하는 경우 피임제의 분해가 촉진되어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될 수도 있고, 천식 치료제 테오필린(기관지 확장제)을 복용 중인 환자가 위산분비 억제제인 시메티딘(약물대사 억제제)을 병용하면 테오필린의 분해를 억제하여 독성이 발생할 수 있다.
약물의 대사를 억제하는 약물을 임상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치료제(팍스로비드, Paxlovid)는 주성분(니르마트렐비르)을 분해하는 효소계( CYP-450)를 억제하는 약물(리토나비르)을 함유한 복합제이다. 그러므로 다른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에서 팍스로비드 처방이 까다롭게 된다.
술을 마신 사람이 수면제를 복용하면 잠이 잘 오는 이유는 둘 다 중추신경 억제제이면서, 동시에 현재 존재하는 술이 수면제의 분해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증가하여 주량이 증가하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안 마신 날에는 오히려 수면제의 분해를 촉진시킨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통상의 수면제 용량으로는 잠이 잘 안 올 수 있다. 이때 수면제의 용량을 증가시키거나, 이런 상태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수면제의 분해가 억제되어 수면제의 최대 용량을 초과해서 먹은 것과 같게 되어 영원히 잠에서 못 깨어날 수가 있다. 특히 꼭 잠을 재촉해서 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연예인이나 의사에서 이런 실수를 잘 저지른다. 술의 분해를 억제하는 항진균제 및 일부 항생제와 같은 약물을 술과 같이 복용하면 숙취의 주범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되지 않아 숙취가 심해질 수 있다. 간에 독성을 초래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복용 중에 과음하면 간의 파괴로 사망할 수도 있다.
약은 씹어 먹는 약을 제외하고는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한다. 자몽 및 주스와 고혈압 치료제(특히 칼슘채널 차단제), 고지혈증 치료제(특히 스타틴), 불면증 치료제(특히 벤조디아제핀), 및 면역억제제(시크로스포린 등)를 투여받는 환자는 약물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부작용의 위험이 증가한다. 예를 들면,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계 약물 등을 주스(특히 자몽 또는 자몽 주스)와 같이 복용하면 이들 약물의 흡수가 증가하고 분해가 억제되어 혈중농도가 최대로 2.5배까지 증가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스타틴 부작용(근육 및 간 독성)의 빈도가 높아지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약물을 우유와 같이 투여하면 약효가 감소하거나(특히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 특정 항암제, 대부분의 위장관 및 감기 약물), 약효가 증가하여 독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비타민 D).
우울증 치료제(모클로베미드) 및 파킨슨병 치료제(세레길린)와 같이 카테콜아민의 분해하는 효소(모노아민 산화효소, MAO)를 억제하는 특성을 가진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티라민을 함유하는 식품(맥주, 와인, 치즈, 초콜릿 등)을 먹으면 분해되지 않은 다량의 티라민에 의해 혈압이 갑작스럽게 상승하여 중풍이 초래될 수도 있다. 치즈와 같은 티라민 함유 음식을 먹은 후 폭발적으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를 ‘치즈 효과(cheese effect)’라고 한다.
최철희 조선대 의대 약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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