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산 속 어느 무덤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서럽게 울고 있다.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한없이 울고 있는 저 할머니에게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의 낙엽을 쓸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쓸어 모은 낙엽 더미는 어느새 두 사람의 장난감이 된다. 두 노부부는 서로에게 낙엽을 뿌려도 웃음이 나고 이미 엉망이 돼버린 마당을 다시 쓸어도 즐거울 뿐이다. 노란 꽃을 서로의 귀에 꽂아주며 연신 “이쁘네요.”,“인물이 훤하네요.”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깊은 밤, 할머니가 변소 가고 싶다는 말에 손을 꼭 잡고 가는 두 사람. 무서우니 어디 가지 말고 밖에 있으라며 노래를 불러달라는 할머니의 말에 변소 밖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시는 할아버지. 백발 노부부의 하루하루는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으로 충만하다. 열둘을 낳았지만 여섯을 잃었다는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항상 자식 잃은 슬픔에 6개의 내복을 사곤 한다. 때로는 할아버지 고집에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할머니 덕에 평온하다. 할머니 생일날 자식, 손주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식들끼리 고성이 오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귀여워했던 꼬마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사고로 죽고 가끔 하던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날로 심해진다. 큰 병원에 가도 나이가 많아 더이상 약도 소용이 없다는 말에 집 안은 침울하다.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절대 손을 놓지 않고 곁에 있는 할머니. 그렇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하루하루 여위어가는 할아버지. 그 겨울 결국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할아버지 무덤 앞에서 주저앉아 할머니는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독립예술영화의 한계 극복

2014년 11월 27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는 현재에도 독립예술영화가 10만 관객을 넘는다는 것이 힘든 여건 속에서 480만이라는 경이로운 관객 수로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독립영화 1위를 기록했다. 개봉 24일 만에 200만 명의 관객 수를 넘어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단기간에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기록을 세웠다. 76년을 알콩달콩 신혼부부처럼 살아온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님아’는 2011년 방영된 KBS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을 보고 진모영 감독이 2013년부터 15개월 동안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로 진모영 감독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올해의 독립영화상, 제21회 로스앤젤레스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 제37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관객상 등을 받은 바 있다.

지난달 19일에 광주극장에서는 다큐멘터리 ‘님아’ 개봉 10주년 특별 상영회가 열렸다. 개봉 10주년을 축하하러 온 영화팬들과 영화를 제작한 진모영 감독의 지인들로 극장은 붐볐다.

진모영 감독은 해남 출신으로 중학교까지 해남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광주에서 다녔다. 진감독은 처음부터 영화씬이 아닌 10여 년간 방송 일에 종사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1997년 KBS ‘긴급구조 119’ FD를 시작으로 KBS 전격 출동 도시대탐험, KBS 뉴스투데이에서 VJ로도 활동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독립제작사 ㈜ 아이앤티디지털의 제작 총괄이사, 프로듀서로서 일하며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 생방송 시사투나잇, KBS 월드넷, 생방송 KBS저널, 특별기획 양극화 시대, 희망의 로드맵, 수요기획 - 최초공개 국가정보원, 특집다큐 - 용산기지. 124년만의 귀환, 수요기획 - K리그. 한국축구 부활의 조건, 엄마의 무릎학교, 도전 골든벨, KBS스페셜-호곡나루 사람들, 삼일절 특집-잊혀진 독립운동, 단파방송수신사건, EBS 다큐프라임-아시아 원시부족탐험 3부작, 톡톡 보니하니, 한국기행, 다큐프라임-이리얀자야 3부작 등 KBS한국방송과 EBS교육방송에서 시사, 교양, 환경 프로그램 등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그러던 중 춘천 MBC TV단막극 인도방랑기, 장편극영화 시바, 인생을 던지다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다가 2014년 자신이 직접 촬영, 제작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 영화로 감독 진모영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전환점 된 영화 워낭소리

진모영 감독은 2011년도부터 영화에 입문했다. 2011년 8·15 특집기획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중 연출자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프로듀서보다 디렉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덕션을 떠났다. 영화감독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였다. 이충렬 감독 역시 광주 출신으로 방송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진감독에게 워낭소리는 자신이 지금껏 걸어왔던 길에 대한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제목은 고조선시대 시가인 공무도하가의 한 소절로, 진감독은 이 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야말로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신념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입증받은 영화 님아로 진감독은 넷플릭스에서 님아 해외시리즈 제작 제의를 받는다. 저작권, 전체 시리즈에 대한 감독 선발권, 프로그램 검수, 확정 등 모든 권한을 진감독이 갖기로 하고 해외 여러 나라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를 찾아 2021년 ‘님아 :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이야기’ 시리즈를 기획, 제작했다.

진모영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이후 2017년에 올드마린보이를 연출한다. 님아 편집 당시 우연히 기차 안 잡지에서 머구리에 대한 기사를 봤다. 대한민국 최북단 고성에서 머구리 일을 하는 박명호씨를 보면서 진감독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악한 환경과 상황임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가장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면서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머구리란 남자 잠수부를 말하는데, 60Kg나 되는 쇳덩이를 몸에 부착하고 공기호스가 있어 해녀들 보다 원활한 작업을할 수 있지만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서 하는 작업이라 생명의 위협을 많이 느끼는 직업이다. 박명호씨는 탈북자로 북한에서 20년 동안 군인으로 있으면서 잠깐 배웠던 머구리 일이 지금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됐다.

영화 올드마린보이는 탈북자 이야기이지만 탈북자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 가족의 이야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 등 우리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지역 문화예술 활동에 매진

진모영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올드마린보이 등을 통해 진솔한 사람 냄새가 나는 작업들을 해왔다. 현재 진모영 감독은 광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 하는 광주·전남 감독 또는 감독 지망생들과 다큐멘터리 워크숍도 진행 중이며 광주 동구에서 추진 중인 고향사랑기부제 광주극장 지정 기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광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는 의지가 있다. 현재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인 진감독은 오늘도 광주 문화예술 활동을 위해 분주하다.

영화 올드마린보이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