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조기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고, 헌재는 12월 27일 재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탄핵안 심리에 들어갔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의‘탄핵 인용’에 무게를 싣고 있고, 조기대선의 시계가 재깍이면서 여야 잠룡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두관 전 의원 등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대표의 압도적 우위다. 이 대표는 앞선 대선 패배 후 곧바로 당 대표에 당선돼 지난해 4월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민주당 현역 의원 대부분이 친명일 정도로 ‘당심’은 이 대표에게 쏠려 있고,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당원들도 이 대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단 하나 변수는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차기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최종 결심 전 2심에서도 같은 형이 확정되면 대권 가도의 기세가 꺾일 수 있다.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탄핵안 심리 결과 보다 이 대표의 2심 선고가 먼저 나오길 기대하고 있는 이유다.

이 대표의 대항마로서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세력 확보에 공을 들이던 김동연 경기지사가 주목 받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해 말 고려대 정책대학원 강연 도중 한 청중이 “조기 대선을 하면 출마할 것인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국가 통치를 할 것인지 궁금하다”라고 묻자 “질문 중에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는 구절이 거슬린다. 나는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답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귀국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친노·친문 적자란 정치적 자양분이 무기다. 김 전 지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또다시 고난의 짐을 지고 있는 데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께 늘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이라며 정치 참여를 시사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12·3 비상계엄’ 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안정적 국회 운영으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우원식 국회의장도 민주당 내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비상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 담을 넘는 사진은 우 의장의 달라진 위상을 대표하고 있다.

여권 잠룡들도 서서히 몸풀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탄핵 정국 전 여권 잠룡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사퇴 선언 후 지지자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정계 복귀를 시사했다.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권 주자가 되려면 당내 최대 계파인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을 비롯한 보수 진영 일각의 반감을 넘어서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여권에서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지난 2022년 7월 대구시장에 취임한 홍 시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연말이 뒤숭숭하다”면서 “어차피 선출직은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부연했다. 정치권에선 홍 시장이 서울로의 이사, 즉 대권 도전 의지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근 행보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26일 한 방송에 출연해 대선 출마 질문에 대해 “공인으로서의 경험을 더 큰 단위의 나라에서 써야 한다고 하는 요구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민의힘 내에서 쓴 소리를 해온 유승민 전 의원도 유력 주자로 거론되고 있고, 탄핵안 표결에서 반대 당론에도 불구하고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지며 존재감을 보인 안철수 의원도 주목된다.

이들 외에도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나경원 의원 등 중진 인사들을 비롯해 탄핵 정국에서 당론을 거부하고 찬성표를 던진 현역 초선 김상욱 의원도 대선판에 파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로부터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5일 한 방송에 출연해 “조기대선 열리면 출마하는가”라는 질문에 “1월 31일 이후에 아마 대통령이 물러나면”이라고 답했다.

대선 출마 기준은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40세 이상의 국민에게 부여된다’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 결과가 1월에 나오면 60일 후인 3월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3월에 대선 투표일이 결정되면 나이 제한에 묶여 출마가 불가능하고 4월이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