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이념 갈등 속에서 2만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여수·순천10·19 사건이 76주기를 맞았다. 여순사건은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아직도 온전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완의 역사로 남아있다. 이로 인해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유족들은 여전히 ‘빨갱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진상규명 조사기한이 만료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는 부실 조사와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전문 인력 충원과 조사 업무 보강 등을 통해 진상규명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남은 기간 모든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에 본지는 여순사건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올바른 진상규명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설립된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여순사건위)’가 지난 2년간의 공식 조사활동을 마쳤으나, 미진한 성과로 인해 조사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순사건위에 접수된 희생자 신청 사건 중 9.4%만 심의가 완료되는 등 조사 진척이 더뎌 희생자 명예회복은 커녕 또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7일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과 여순사건위 등에 따르면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군인 2,000여명이 제주4·3사건 출병 명령을 거부한다는 명목으로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주장하며 봉기한 사건이다.

이후 여수를 중심으로 전남 동부권역으로 14연대의 봉기는 뻗어나갔으며, 1953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2만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이 공산주의자가 우익세력과 결탁해서 일으킨 반국가적 반란이자 극우파가 가담한 ‘폭동’으로 규정했다.

이로인해 여수와 순천, 광양, 고흥 등 전남 동부권에 주거하는 민간인들은 여순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빨갱이라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오랜 시간 금기시됐던 여순사건은 1990년대 이후 진실 규명 노력이 본격화됐다.

2001년 16대 국회발의 이후 4차례나 무산된 법안이 20년 만인 지난 2021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반란’ 등의 표현을 ‘항쟁’으로 정정했다.

지난 2022년 10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돼 지난 5일 2년간의 공식 조사활동을 마친 여순사건위의 활동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별법에는 여순사건위가 조사활동 기간 진상조사와 희생자·유족의 치료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년간의 조사 활동은 결국 부실한 채 마무리됐다.

여순사건위 활동기간 여순사건 희생자 및 유족 신청 건수는 총 7,546건에 달했지만, 이중 전남도 실무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건수는 3,721건(49.3%)에 불과했다.

최종적으로 여순사건위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건수도 708건(9.4%)에 그쳤다.

조사활동을 마치고 6개월간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담당하는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도 뉴라이트 논란이 일고 있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이들 중 일부 극우 인사들이 여순사건을 ‘14연대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여순사건을 겪은 유족은 단 한명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획단의 위촉직 8명 중 5명은 국방부 전·현직 관계자로 가해자(군·경)측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76년이라는 세월 속 ‘빨갱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 민간인 희생자들의 고통도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정부는 처음으로 여순사건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결정했다.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76년 만이다.

이러한 상황 속 조사위의 부실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조사 등으로 또다른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면서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여순사건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라는 점이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며 “진상규명 기한 연장을 통해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과거사 청산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