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은 지지부진한 채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조사 기간 연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더군다나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기획단원의 편향된 정치이념과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피해자 명예회복 등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7일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여순사건위)가 지난 5일 2년간의 공식 진상규명조사활동을 마무리했다. 여순사건위 활동기간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7,546건으로, 이중 희생자 결정 심의가 최종 완료된 건은 708건(9.4%)에 불과하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파악한 신청자 1인당 여순사건위 계류기간은 평균 222.2일로, 여순특별법 시행령에 명시된 ‘90일 이내’ 처리 기한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기한 내 처리 의지 부족” 비판
특별법을 살펴보면 여순사건위는 전남 동부 6개 지자체로 구성된 실무위원회의 심의 요청을 받으면 90일 이내에 희생자·유족 여부를 심사·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여순사건위의 진상규명 신고접수 기간이 종료된지 1년이 지났지만 지난 8월 기준 대부분의 사건이 여순사건위(40.17%)와 실무위원회(47.93%)에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여순사건 유가족과 지역시민사회단체는 정부와 전남도가 법정 기한 내 처리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실무위원회 회의 11회 중 단 2회만 참석했고 한덕수 총리가 주재하는 여순사건위 회의는 2번 뿐이었다.
총 9회의 여순사건위 회의도 7번이 서면으로 진행됐다.
특별법상 여순사건위의 희생자 결정 심의 기간은 내년 10월 4일까지로 진상규명조사 기간 보다 1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조사활동 결과 1건당 평균 처리기한인 222.2일을 고려한다면 특별법 개정을 통해 추가 기한 연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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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10월 26일 여수서국민학교에서 부역 혐의자를 색출하는 장면으로 오른쪽 대열의 사람들이 부역 혐의자로 11월 1일에 처형되었다. 이 사진은 당시 호남신문사 사진기자였던 이경모씨가 촬영했다. 광양시 제공 |
●토벌 등 용어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
내년 4월까지 여순사건위의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담당하는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구성도 논란이다.
작성기획단 13명 가운데 위촉직이 8명으로 이중 5명이 국방부 전·현직 관계자라 가해자(군·경) 측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기획단 구성원 다수가 극우 인사들로 편중돼 있고, 여순사건을 ‘14연대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성기획단은 또 지난해 12월 선정한 20개 조사 과제에서 ‘14연대 반란’, ‘토벌’, ‘민간인 가담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개 조사과제 중 3건만 직접 조사하고 나머지 17건은 외부 대학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14연대 반란의 발생과 확산 및 정부의 조치와 군의 토벌 과정’ 조사과제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전략 행위자들의 소영웅주의를 포함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14연대 반란과 외부 행위자들의 개입범위와 역할’은 남로당과 북한, 소련 및 중공의 역할을 규명토록 했다.
또한 ‘14연대 반란과 지역민 및 좌익단체의 개입범위와 역할’, ‘6·25전쟁 발발 이후 여순사건 관련자들의 활동과 토벌 작전’, ‘여순사건 재소자들의 형무소 내 소요폭동 사건’ 등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과제 외부용역 진행 본질 왜곡 우려
이처럼 대부분의 과제를 외부 용역으로 진행한데다 ‘보수 편향’ 인사들로 채워진 탓에 여순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위해선 기획단의 전면 재구성과 함께 조사 방향의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순사건위는 △전문인력 충원 △우선순위 선정 △조사업무 보강 △소위원회 활성화 등으로 희생자·유족 결정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 이형용 대변인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순사건 유족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며 “특별법 개정안의 처리 지연은 국가가 진실 규명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 망언과 왜곡을 멈추고, 남은 시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해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