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 극한 호우, 폭염과 한파로 인한 가을 실종 등 이상 기후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농경지가 침수되고 자식같이 키운 작물들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죽는 등 농도(農道)인 전남 지역민들에게는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기후위기가 농업계를 덮치고 여기에다 농촌 고령화·인구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까지 겹친 최근, 식량안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마트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이러한 위협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려되는 모든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끌어 대도약 미래 100년의 길을 열겠다는 포부다.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교육형 실습을 진행중인 보육생이 방울토마토 줄기를 관리하고 있다.

■총 33.35㏊규모 미래 농업을 위한 혁신공간

“멜론 적정 생육을 위한 적정 온도는 봄·가을 21도에서 여름철 24도로 가변적입니다. 내 농장 온도가 낮으니 차이가 크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합니다(자동 소프트웨어).”

을사년 새해를 앞두고 찾은 고흥군 도덕면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고흥 혁신밸리). 지원센터를 지나 청년 보육 실습단지에 들어서면 실내 유리온실 농원이 조성돼 있다.

일반 농장과 다르게 곳곳에 모니터가 설치돼 있고 추운 바깥 날씨와 상반되게 실내는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로 따뜻했다. 항시 작물 생육에 최적화된 온도·습도·산성도(ph) 조건이 유지되며 실시간 측정 및 모니터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매년 청년보육생 52명을 선발해 △입문교육 2개월 △교육형실습 6개월 △경영형실습 12개월 등 총 20개월 동안 미래 농업 인재 양성 과정이 진행된다. 매년 지원자는 늘어나 지난해 3.6:1 경쟁률을 기록했고 현재 전남 4기 교육생들은 경영형 실습, 5기 보육생들은 교육형 실습이 한창이다.

보육생들은 팀을 이뤄 토마토·멜론·딸기·오이와 지역 특산품인 만감류 등을 재배한다.

보육생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자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농업 관련 지식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천후 영향을 받지 않고 철저한 생육 환경 조성, 풍부한 일사량 장점을 지닌 만큼 교육 회차가 지나갈수록 실력은 일취월장으로 오른다는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오재억 고흥군 스마트팜 기획팀장은 “적절하지 않은 환경에 작물은 6시간만 노출돼도 상품가치가 떨어지거나 뿌리가 괴사할 수 있다”며 “하지만 교육을 거듭할수록 수확량은 일반 농사보다 훨씬 많고 품질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 지원센터 전경. 고흥군 제공

이같은 솔루션은 ‘빅데이터 센터’에서 관리한다. 작물의 식재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최적의 생육환경을 데이터로 만든다. 이를 자동 소프트웨어는 온실 별 1주일 동안 환경 상황과 피드백 등이 담긴 주간 보고서를 스스로 작성해낸다.

이외에도 최근 4.05㏊ 규모 실증단지가 조성돼 본격 운영에 돌입했다. 정보통신기술 기자재와 생육 실증 장비를 포함한 47종의 장비를 구축했으며, 12개 기업이 온실 구역에 입주해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팜을 경험하지 않은 기존 군민 농업인에게 임대해주는 ‘기존 농업인용 임대단지(3.6㏊)’, 청년창업 보육 우수 수료생에게 스마트팜을 임대해주는 청년 임대형 단지(5.76㏊)도 마련됐다.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 지원센터 전경. 고흥군 제공

■청년농 교육·성장의 요람…‘활력 가득’ 지역으로

고흥 혁신밸리는 곳곳에서 활력이 넘쳤다. 평균 연령 31세 젊은 교육생들에게서 나오는 산뜻함이었다.

이곳은 지역 소멸에 대응할 고흥군의 ‘2030 인구 10만 달성’ 목표를 이룰 키포인트로도 손꼽힌다. 그러므로 유입된 청년 교육생들이 떠나가지 않게 농업 지식·기술 함양은 물론 수료 후 자립까지도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먼저 교육형 실습 기간 생활하는데 금전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실습비 월 70만원 한도 지원이 이뤄진다. 경영형실습 기간에는 여기에 더해 1인단 연간 360만원 한도 재료비가 지급된다. 직접 기른 작물 판매액까지 더하면 중소기업 초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12명은 혁신밸리 내 임대형 팜 우선 입주기회를 얻을 수 있다. 3인당 한 팀을 꾸려 총 4개 팀이 3년 간 1인당 1,600㎡ 공간에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임대료는 1인당 연간 약 50만원으로 저렴하다.

당연히 수확량과 품질은 뛰어나 최대 연 1억 3,000만원 매출을 올린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졸업 후 창농자금 형성에 큰 도움이 돼 만족도가 가장 높다.

또한 교육 수료자에게는 △청년농 스마트팜 종합자금 대출 신청 자격 부여 △청년후계농 선발 시 가점 부여 및 후계농업경영인 선발인원 별도 배정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보증비율 우대(9%) 등 혜택이 주어진다.

관외 거주자는 월 10만원에 임대주택(쉐어주택) 보금자리도 제공한다. 취학아동을 둔 가정이나 신혼부부도 20평대 주택에서 월 20만원 대에 지낼 수 있다.

이같은 혜택에 실제 고흥군의 젊은 인구는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2~2023년 동안 고흥군 25~34세 인구는 총 350명 증가했다. 지난해는 20~24세와 35~39세도 각각 5명·62명씩 늘었다. 홍승현 기자







“전국 최고 완숙토마토 스마트농장 목표”

■스마트팜 1기 수료 유지원 씨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없었더라면 좌절하고 귀농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거에요”

1기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 수료생 유지원(30) 씨는 자신의 농장을 일구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충남 보령 출신인 유 씨는 지난 2019년 부푼 꿈을 안고 먼 타지, 전남 고흥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농수산대학교와 농업과학원 재직 시절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단돈 1,000만원을 들고 고추 농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자세와 달리 농사라는 건 생각보다 쉬운게 아니었다.

그는 “고흥은 농사짓기 적합한 기후환경을 지닌데다 창농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다. 또한 이미 이곳에 자리잡은 대학 선배들이 있어 이 장소를 선택했다”면서 “그런데도 정말 쉽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농자재를 빌리고 많은 조언을 얻었는데도 흉작을 겪었고 빚까지 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20대 후반 접어든 나이에 큰 난관을 겪은 유 씨는 자책하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우연히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그렇게 귀농 꿈을 접기 직전 2020년 10월 입소, 농업 교육을 다시 듣게 됐다. 첫 기수인 만큼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다.

막상 교육을 접하니 이미 수료하거나 수강했던 과목이어도 너무 어려웠더라는게 유 씨의 소감이다. 대학 3년·농업 지원기관 근무 1년까지 총 4년 간 영농 지식을 함양한 상태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료를 앞둔 2022년에는 더 체계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혁신밸리 스마트팜 임대 만료 기간은 올해 6월까지다.

완숙토마토 재배로 매년 약 1억 이상 수입을 올린 그는 전국 최고 품질을 생산하는 완숙토마토 스마트농장을 일구는게 목표다.

유 씨는 “동일 면적 스마트팜을 설치하려면 15~20억원이 드는데 초보 농업인이 비용부담 없이 마음껏 재배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며 “다만 스마트팜이라는게 모든 일을 다 해주는 건 아니다.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데 이곳을 거친다면 충분이 이룰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