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다 거리에 툭 떨어진 나뭇잎 한 개 주워들었다. 무수한 언어를 나뭇잎에 적어보다 내려두었다. 몇 개의 언어는 사라지고 마음 담은 나뭇잎 편지 보내지 못하고 책 속에 고이 넣어두고 난 밤, 그렇게 울던 풀벌레 소리도 사라져 버린 시월의 밤의 적막함이 좋다.

소설은 쓰려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한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씩 작품을 쓴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고통의 삶을 이겨내면 글을 쓰는 것일까? 정현종 시인은 '왜 글을 쓰냐구요."라는 질문에 "나의 안과 밖 환해지려고요." 라며 글쓰기라는 시로 독자에게 답하고 있다. 작가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힘든 고통의 무게를 견디며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애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 내면의 고통을 승화되는 삶은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의 감정 표현의 그림은 르네상스 미술의 창시자 마사초에서 찾을 수 있다. 마사초는 관찰을 토대로 대상을 표현한 화가이며 인물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이다. 이전의 화가들은 종교적 엄숙주의에 사로잡혀 결코 보지 못했던 것, 혹은 보고도 외면했던 것을, 마사초는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마사초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세례를 베푸는 동안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렸다. 일상의 거룩함이 종교적 권위에 절대로 밀리지 않는 인간의 감정의 존재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랑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고통의 삶을 표현하는 마사초의 그림으로부터 인간의 삶은 더 진보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런데 세상은 살다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존재해 삶이 희망이 되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도 소설 '흰' 작품 발표에서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쓴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잊을 수 없는 자신에게 글을 쓰는 행위가 고통을 잊는 진통제임을 강조했다. 한 작가는 "글을 쓴다는 건 빛을 향해 다가가려고 애쓰는 몸부림이다. 내 소설을 어둡고, 힘든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말아달라. 부족한 사람이 싸우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하였다. 고통의 삶을 글로써 빛을 찾는 쓰기는 치유를 위한 과정인 것이다.

작가는 글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통로를 만들면서 삶의 충만감을 느끼지 않으면 작업을 이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인간의 어둡고 아픈 긴 터널을 벗어나 삶의 단계에 도달했을 때 갖는 성취감, 충만감에 이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았다. 삶은 고통을 인내하고 숨기며 사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배우며 살았다. 이제는 우리의 내면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아픔을 숨기지 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삶의 내면의 고통을 문학, 미술, 음악, 예술로 승화시키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작가이며, 예술가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작품을 보고 개미의 작가 베리베르는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알게 되면서 어떤 비극이나 전쟁이 찾아와도 굴하지 않고 맞서면서 열의를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 한국인들의 용기가 가장 와 닿았다."며 "가슴 아픈 한국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인들의 굳센 의지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는 인터뷰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고통을 안고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승화시키면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어릴 적 들었던 언어는 가슴이 아리다. "내 속이 썩어 문드러졌어." 상처를 외면하고 숨기며 살다 보니 한이 되어 가슴을 치며 함성을 터트린다. 우리 안에 아픈 상처를 드러내 글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어둠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상처를 직시하고 글로 표현하는 외롭고 힘든 고통의 과정을 통해 독자를 치유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은 작가의 눈으로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빛을 밝히며 열린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아픈 상처를 발견하는 것은 사랑이다. 인간애가 글을 쓰는 이유다. '글을 쓴다는 건 빛을 향해 가는 몸부림이다.' 한강 작가의 언어를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