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낮아지는가 했더니 어느덧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코앞이다. 입동을 전후로 김장을 담그면 그 맛이 더 좋다고도 하며, 전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고 그해 겨울의 추위를 가늠해왔다고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김장철은 늦어지거나 사라져가고 있고, 기상 예측은 해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세상 이치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마는 정작 눈앞에서 그 변화를 마주하게 되면 낯선 것도 사실이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변화로 인한 결과를 예측해야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동양철학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길이라는 뜻을 지닌 '천경지위(天經地緯)'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나 법칙을 의미한다고 한다. 변화를 바라보고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지적 성찰의 영역에서도 관심사가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보자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자체가 불변의 진리가 되기도 하다.

세상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우리 내면으로 돌려보기로 하자.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 때때로 요동치는 기분이나 고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습관들…. 참으로 수많은 많은 일들이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하지 못한 말들과 이로 인해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 그리고 충족되지 못한 우리의 욕구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로 마음 한 쪽에 켜켜이 쌓이기도 한다. 급기야는 묵혔던 마음들이 내면의 한 자리를 차지한 채로 잠가 거지나 봇물 터지듯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다양한 마음의 증상으로 말이다. 예컨대 불면이나 우울감, 알 수 없는 급격한 불안이나 신체적인 불편감 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괴롭고 마음이 아픈 것이 지속되면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한다.

대개 이러한 마음의 병은 그 원인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이해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고통과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분간하는 힘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마음의 고통은 대개 이 두 가지를 혼용하는 데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지금 경험하는 스트레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혹여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사람이 그래서, 내 가족이 그래서, 내 부모가 그래서, 내 환경이 그래서, 그때 그 사건이 일어나서 등으로 시작하는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초기 환경(대개는 부모와 가정환경), 타고난 성격의 기질과 외모, 타인의 말과 행동,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 등등. 이러한 것은 결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며, 여기서 기인하는 고통 또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고통이다. 그런데도 마치 이러한 고통을 자신에게 타고난 결함이 있거나 고통을 경험해도 되는 존재라고 해석한다면?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는 습관을 만든 것이고, 그러한 습관이 축적돼서 성격을 형성하고, 그러한 성격이 자신의 전체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말이다.

마음의 고통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바로 이러한 것은 아닐까도 싶다. 선택하지 않은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지금의 고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진리 말이다. 무언가 극적인 변화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충분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자신을 객관화하는 냉철함도 필요하다. 타인의 마음이나 자신의 과거, 그리고 오지 않은 미래가 혹시 고통의 주제나 내용이 되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러하다면 이러한 영역은 자신이 결코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일 텐데, 이것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자신이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래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미래,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말이다. 엄청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 해석하는 방식일 뿐이다. 즉, 선택하지 않은 고통을 명확하게 인지해서 현재의 삶에서 고통을 선택하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자각하는 것만이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지 않을까? 이러한 해석이 우리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표정과 습관을 바꾸고, 성격과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 이것만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변의 진리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