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3일 운명한 고 선종철씨의 아내 김옥희씨(82)의 사연이 담긴 ‘30번의 남자’ 가사 일부분이다.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오월어머니들의 노래’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ACC 아뜰리에를 찾았다. ‘오월어머니들의 노래’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어머니들의 한을 노래로 승화한 공연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15명의 어머니의 가슴속 묻은 사연을 가사로 담았다.
올해는 민주·인권·평화라는 보편적 가치관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제주(4·3사건), 광주(5·18민주화운동), 서울(6·10항쟁) 유관기관과 협력해 공연을 연다.
첫 공연은 15일 제주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개최되며, 25일 ACC 예술극장 극장1과 6월 1일 연세대학교 100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차례로 열린다.
지난해까지는 전문 음악가와 무대에 올랐다면 올해는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만든다.
이날은 가족들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들은 가족의 손을 꼭 붙잡고 황유순 지휘자와 유형민 예술감독의 지도로 노래의 합을 맞추고 있었다. 이날 연습공연의 연주는 함께 무대에 오르는 재즈밴드 크림 컴퍼니와 국악실내악단 도토리 포켓이 참여했다.
김옥희씨의 남편 고 선종철씨는 당시 지원동 마을 이장이었다. 남편은 계엄군의 총탄에 마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10여 분 만에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상무관으로 옮겼고, 그때 부여받은 관 번호가 30번이었다.
남편을 잃은 아픔을 뒤로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3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왔다. 김씨는 손녀인 한주리씨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한 씨는 김씨가 노래를 부르며 힘든 모습을 보이고, 울먹이자 어깨를 다독이기도 했다.
김옥희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마음과 앞으로 살아갈 생각에 막막했던 시간을 보냈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자 악착같이 살았다. 여전히 오월이 다가오면 힘들다.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니 한결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며 “손녀가 함께해 든든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6월 16일 운명한 고 황성민씨의 어머니 원사순씨가 의자에 앉아 다른 가족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큰아들인 황씨의 사진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원씨에겐 두 아들이 있다. 두 아들 모두 계엄군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었다. 어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은 80년 5월화가를 꿈을 품은 고등학생이었다. 그 꿈은 계엄군으로 인해 부서졌고 원씨의 가슴 속에도 한으로 남았다. 손에 쥐고 있던 아들의 사진을 한번 보고 나서 연습을 하러 나섰다.
원씨는 가족이 함께 무대에 오르지 못해 오월 어머니 중 한 분인 추혜성씨가 함께했다.
“온 천지에 꽃 향기가득해 꽃잎이 흐드러져도/ 그날 이후 너와나 우리의 시간은 멈춰버렸구나/ 내 맘 속 꽃으로 와준 아들아/ 내 아들로 와줘서 고맙구나.”
노래와 박자가 어긋났지만, 원씨는 노래 ‘내 마음 속 꽃 한송이’를 투박하게 불렀다. 원씨의 음성이 담긴 노랫말은 아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보는 이들도 눈물짓게 했다.
이근례씨(87)는 지난 1980년 5월 27일 세상을 떠한 아들 권호영씨를 22년만에 만났다. 아들 권씨는 행불자로 구묘역에 잠들어 있었다. 이를 까맣게 몰랐던 이씨는 방방곡곡으로 아들을 찾아다녔고 신묘역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야 아들을 찾았다. 이씨는 막내딸 권영애씨와 아들의 그리움을 담은‘도무지 알 수 없는 얼굴로’를 연습했다.
“매일 내 아들이 생각나/ 떠나간 뒷 모습이 생각나” 이씨는 노래를 부르른 순간순간마다 울먹였다. 딸 권씨는 그런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이씨는 “허무하게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떠올리니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마음에 눈물이 난다. 매년 부르는 노래지만 완곡하기가 힘이든다”며 “그래도 올해에는 딸아이가 함께 해준 덕분에 한결 났다”고 말했다.
딸 권씨(49)는 “가족 중 5·18을 겪은 사람이 있으면 온 가족이 희생을 해야 한다. 오빠를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속에 살았다”며 “노래를 함께 부르다 보니 어머니의 노래 가사가 더 잘 들렸고 함께해서 좋다. 공연을 통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5·18왜곡도 멈췄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이니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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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ACC 무대에 오른 오월어머니의 노래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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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사순씨와 추혜성씨가 ACC 아뜰리에에서 원씨의 노래 ‘내 마음 속 꽃 한송이’를 부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