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가 아직도 두 달이 넘게 남았지만 우리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지 않는 바에야 올해 최고의 뉴스는 단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일 것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후 국내총생산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서는 놀라운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 우리나라에 앞서 세계무대에 진출한 일본은 70년대까지 아시아 국가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지금은 정체된 반면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BTS로 대변되는 KPOP과 넷플릭스를 통하여 방송되는 한국의 드라마는 이미 국내시장을 넘어서 세계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 배경이 된 것이란 측면에서 이념을 앞세워 이를 폄하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문학상수상은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한 목소리로 축하하고 있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세력들 조차 아주 미미한 일부 의견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오랜만에 이견이 없습니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신문의 1면을 장식한 한강작가의 수상소식을 보면서 한 사람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강작가의 이번 문학상은 우리 광주시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노르웨이 한림원은 한강작가의 작품들에 대하여'역사의 상처와 직면하고 인간 삶의 부서지기 쉬움을 노정한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를 하였습니다. 이미 8년 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외에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가 이번 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두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정치적인 행동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감추고 싶어 하는 아프고 쓰라린 과거의 상처들이 한강 작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을 통하여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폄하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도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북한군이 개입하였다'거나 '국가전복세력의 반란'쯤으로 치부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도 '역사를 왜곡하였다'는 등의 '왜곡된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을 폄하하는 글을 올린 한 작가는 자신의 글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권이 얽힌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왔다면, 또 앞으로도 그 우물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건 더욱 더 어려운 일이 된다'고 했습니다. 참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그런데 그 글의 말미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무 죄 없이 수감되어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남을 비판하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가는 5·18민주화운동을 '오쉿팔'이라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고 저급한 표현으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단 한줌의 기여도 한바없는 자들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 숱한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표현의 자유'을 방패삼아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 가소롭지만 자유와 민주와 인권의 이념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가치임을 곱씹으면서 넘어가려 합니다.

그들의 말처럼 '자신이 믿어온 것과 상치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게 심리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 사회적 생존을 위협받는 선택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만하겠습니다. 때론 '욕'하는 것도 아까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