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이후부터 동생들을 데리고 자취생활을 했다. 용돈은 물론, 식량이나 생필품들은 왜 그리 빨리 바닥이 나는지…. 그것들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고향집으로 향했다. 함께 시간을 맞추자면 막차를 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일요일 저녁때까지는 자췻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짐꾸러미 말고도 더 긴 시간 채워 와야 할 중요한 것이 있었다. 떨어져 지내는 어린 자식들에게 베푸는 어른들의 사랑을 눌러 담느라 매번 월요일 새벽 첫차에 우르르 몸을 실었다.

그렇게 막차와 첫차를 타는 일은 결혼을 할 때까지 이어졌으니 버스에 어린 여러 기억들은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언제부턴지 내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대부분 사람들이 ‘첫차와 막차’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막차와 첫차’라고 일컫곤 한다. 타지로 떠날 때 탔던 첫차보다는 고향집으로 데려다주는 막차에 몸을 싣기를 늘 갈망해서였을까. 해 질 녘, 배고프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췻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며 고향 쪽으로 향하는 막차의 뒷모습을 얼마나 애틋하게 바라보곤 했던가.

막차와 첫차를 이용하는 단골 승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통학생들이 가장 많았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5일 장마다 옮겨 다니는 장사꾼들 순서였다. 비슷한 공간에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일몰과 동무하며 출발해 세상과는 무관한 듯 어둠 속을 달렸던 막차 안은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많았다. 어른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학생들마저도 캄캄하기 그지없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밤이 이끄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목적지인 안식처에 도달하면 안도의 미소를 남기고 유순하게 사라져갔다. 그에 비해 첫차는 동이 터오는 햇살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장사꾼들의 무용담도,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수다도, 어른들의 끊임없는 훈계도 차창 밖의 산자락과 들판을 따라 함께 일렁거렸다. 빛이 있고 에너지가 넘쳐났지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삶의 긴장감이 소음으로 변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젊은 날의 나는 막차와 같은 분위기와 사색을 동경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밤의 향기에 오롯이 매몰되고자 새벽 3시에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차분히 글을 쓰고 공부를 해야 했던 처지와도 여러모로 일치되어 그런 생활에 만족하며 지냈다.

세월과 함께 어느 즈음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새벽 3시쯤에 깨어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다. 과거의 그 시간은 잠들지 않은 밤의 연장인 막차였다면, 9시 뉴스도 끝나기 전 잠들었다가 깨어난 지금의 시간은 또 다른 날인 새벽 첫 차인 것이다. 새로운 날을 위해 이를 닦고, 필요한 책을 보고, 강의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등 첫차 안에서만큼이나 부산하게 일과를 시작한다.

삶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생의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 나이에야 드디어 첫차의 매력에 흠뻑 취해있다. 아침마다 바삐 허둥대면서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이 “태생적으로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야!”였다. 그때는 이렇게 이른 새벽에 산뜻하게 깨어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들은 흔히 그런 변화를 ‘노인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한들 어떠하랴. 모두가 적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노후의 생활을 앞두고 적어도 고립이 아닌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염원의 울림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다.

이러다가는 내 말버릇까지 서서히 ‘첫차와 막차’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내게는 영원한 ‘막차와 첫차’이다. 지금도 내 마음은 하루에 몇 번씩 고향으로 향하는 막차에 오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