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좌파건 우파건 그 어느 쪽에서도 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를 굳게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75년 전 이념적 극단주의를 우려하며 말한 “맹목적인 믿음은 광기의 시작”이라는 우려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비판적 사고야말로 세상의 거짓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한 러셀의 1950년 저서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21세기북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러셀은 책에서 현대 사회의 인간은 이성이 마비됐다고 비판한다. 1·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그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 종교적 광신이 팽배하면서 합리적 사고가 설 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감정과 선입견, 사회적 압력에 휩쓸려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한다.

러셀은 자기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 속 어리석은 믿음과 행동을 예로 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적십자사가 ‘흑인의 피를 백인에게 수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아리아인의 피가 유대인의 피로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독일 나치 정권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집단적 어리석음은 인간이 자기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러셀은 설명한다. 인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믿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해석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면서 이에 반하는 모든 의견을 배척하는 교조주의가 비이성적 사고를 더욱 부추긴다고 경고한다. 러셀은 교조주의자들은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해 사회를 경직시키고, 다양성을 억압하며, 갈등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러셀은 교조주의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비판적 사고를 견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그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생각을 엄격히 검토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석봉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