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단색화의 반복적인 그리기 행위는 강압적인 군정 속에서 저항감과 의지,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양식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색화 작가들은 점 찍기, 선 그리기, 색 덧칠하기 등 반복된 행위와 시간의 흐름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는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는 순수하게 윤리적 행위로 설명될 수 있는 전 세계에 걸쳐서 유일한 현대미술사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70년을 기점으로 확산한 한국 단색화의 대표작가 이우환, 곽인식, 박서보, 하종현, 정영렬, 허황, 최명영, 윤형근, 정상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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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 작 ‘From Point’ |
‘단색화:무한과 유한’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점과 선, 그리고 여백(이우환) △표면에서 빛으로(곽인식) △시각적 촉각(정영렬 하종현) △사유의 시간(박서보) △반복, 시간의 축적(허황 최명영 정상화 윤형근) 등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1층 갤러리1 ‘점과 선, 그리고 여백’섹션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Drawing’(1977)을 시작으로 ‘From Winds’(1984), ‘From Line’(1984) 등의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물질과 공간, 그리고 깊은 동양적 사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구현된 반복적으로 찍힌 점과 그어진 선은 신체의 움직임을 동반한 수행적 행위이며 동양적인 기와 생명력을 구현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점과 선’ 시리즈는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습득한 전통 서예와도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다.
갤러리2 ‘표면에서 빛으로’섹션은 곽인식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일본의 전통종이인 화지에 투명한 색점을 찍은 작가의 작품은 앞뒤의 점의 차이가 점의 중첩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작품에서 구현된 투명한 색은 물질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투명한 빛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Work 82H’(1981), ‘Work 84B’(1984), ‘Work 84M’(1984) 등의 작품을 들여다보노라면 또다른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갤러리3 ‘시각적 촉각’섹션은 하종현, 정영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하종현 작가는 배압법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했다. 올이 굵고 투박한 마포의 성질을 이용해 마포의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이 물감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손이나 도구를 이용해 재구성했다. 광주 출신인 정영렬 작가의‘적멸’ 연작은 한지 본연의 색채와 질감을 강조, 부드럽고 온화한 음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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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근 작 ‘UMBER-BLUE 76’ |
갤러리5 ‘반복, 시간의 축적’섹션에서는 허황, 최명영, 정상화, 윤형근의 작품이 전시됐다. 정상화 작가의 ‘무제 85-12-2’(1985)는 푸른빛 격자로 나눠진 화면 속에서 작가만의 조형언어를 탐색할 수 있고 윤형근 작가의 ‘UMBER-BLUE 76’(1976)은 화면에 수직으로 내린 검은 붓자국이 왠지 모를 심연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다.
갤러리6은 시대별 단색화 전시 일정이 소개돼 있고 제1회 ‘에꼴드 서울’ 도록(1975), 제7회 앙데빵당전(1979) 도록 등 아카이브를 전시했다. 전시는 5월 25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