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를 가득 안고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달리다 멈춘다. 기찻길 넘어 담장 사이에 맨드라미 붉은 깃을 보니 계절은 어느덧 가을로 향하고 있나 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문화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연극 맥베스를 보러 서울행 기차를 탔다.

장충단 공원에서 국립극장 해오름관까지 불어오는 바람과 나무 그늘에 무거운 몸을 맡긴다. 국립극장 해오름관에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저만큼 아는 사람이 보인다. 반가워 인사를 하려다 멈추었다. TV에서 봤던 탈렌트다. 나만 아는 사람인 것이다. 민망한 상황에 혼자 웃고 쑥스러운 몫을 감당한다. 천 이백 명 객석에는 빈자리가 없다. 잠시 후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 전령이 사라지고 맥베스를 맡은 황정민의 등장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세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가 승전 후 벗 뱅코우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이를 들은 레이디 맥베스는 왕을 살해하게 되고 결국 맥베스가 왕이 되지만 지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파멸의 길을 걷는다. 국립극장 해오름관에서 본 맥베스는 첨단 시스템을 도입해 연극 무대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만날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번 맥베스 연극은 전통 연극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새로운 연극의 장르를 보여주었다. 스크린과 조명을 이용한 시각적 효과, 전통 연극에서 볼 수 없는 화상 통화, 현대적인 의상은 정통 연극의 무거움을 덜어내 주었다. 대극장에서 위엄있는 배우들의 열연은 큰 무대를 압도하는 연기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맥베스 연극을 보면서 한 달 전에 광주 소극장에서 희망 컴퍼니의 '목욕탕 브루스' 연극이 생각났다. 소극장에서 만난 연극은 공감과 소통의 시간으로 관객이 무대와 배우를 가까이에서 만나 공연 문화의 참맛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연극은 좋았다. 메마른 영혼에 단비를 만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공연은 소극장에서 만난 연극이었다. 작은 무대지만 무대와 관객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소통이 감동의 시간을 준 것이다. 광주 소극장에서 연극을 함께 봤던 어린 지인은 연극 공연이 있는 것도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배우의 몸짓, 표정을 보니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만난 것 같아 좋았다며 연극이라는 장르를 만나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 주었다. 목욕탕 브루스는 무대는 정통 연극으로 소품도 정적이다. 90년대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평상, 몇 가지의 소품은 짜임새는 있지만 소박하다. 또한, 소극장의 매력은 관객과 무대가 가까워 배우의 표정, 감정을 볼 수 있어 더욱더 공감되고 소통이 되는 무대였다. 이에 반해 대극장은 조명, 소품, 의상 등 현대적인 감각을 볼 수 있지만, 무대와 먼 관람석은 배우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앉아 있어도 배우와 관객은 멀게 느껴진다. 대형 극장에서 공연을 볼 때는 한쪽에 스크린을 두어 배우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영상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두 연극을 보면서 대도시와 지방의 문화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지방에 사는 관객은 연극이라는 문화공연을 접할 수 있는 공간과 공연이 적다. 서울은 대학로를 걷다가도 "우리 오늘 연극 볼까?" 하면 가까운 연극무대를 찾을 수 있는 무대가 많다. 그러나 지방은 많은 사람이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공연으로 끝나기 때문에, 일상에서 연극이라는 무대와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은 꼭 큰 무대가 아니어도 좋다. 소극장에서라도 관객이 가까이 무대를 만날 수 있는 연극문화가 활성화된다면 자연스럽게 연극 무대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의식주를 넘어 문화의 욕구가 있다. 지방은 큰 예산을 투여할 수 없지만, 소극장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이 올려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배우가 공연을 매주 할 수 있는 공간과 예산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광주도 소극장을 가면 연극을 볼 수 있는 공연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광주는 예술의 도시다. 그런데 정작 광주가 문화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의문이다. 이에 광주도 지인을 만나면 차와 식사를 넘어 "소극장에서 연극 보자." 대화가 일상이 되는 연극무대가 많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