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경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KIA 타이거즈가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즐거울 일 없던 광주·전남에 모처럼 미소 가득한 웃음이 번지는 요즘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의 작품을 우리의 언어로 된 글로 읽을 수 있다는 데 기쁨이 크다. 한 작가가 쓴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국가폭력의 역사. 즉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로 남아 있는 5·18 민주화운동의 상흔과 제주 4·3등을 다루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대한민국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일상 삶속 폭력문제를 다룬다. 이번 수상은 한국의 아픈역사와 국가폭력에 천착해 왔던 한강 작가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림원에서도 수상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고통을 느끼고 있는 지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포스트 5·18세대)들이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을 마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광주시 북구 중흥동에서 자란 그의 5월에 대한 인식이 명쾌하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한 작가의 글은 단문이면서 차분하다. 희노애락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듯한 얼굴표정의 한 작가를 꼭 닮았다.



‘소년이 온다’ 국가폭력 맞선자들 이야기

시적 산문이며 문장이 짧고 명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글은 아프다. 독자들은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소년이 온다’는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사망했던 문재학 열사, 안종필 열사 등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득 ‘사체냄새가 난다’는 문장 속에서 어릴적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울음 가득한 상여소리와 마을 앞을 하직하며 떠나가던, 흰꽃봉오리로 뒤덮힌 상여가 생각 난다. 향초에서 나는 진한 향기와 가족들의 울음소리, 그동안 한번도 맡아본적 없던, 숨도 잘 쉴수가 없던 기분나쁜 냄새, 아무것도 모를것 같던 세살짜리 아이의 아빠를 부르는 외침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장례식장을 가면 오래 있지 못한다. 어릴적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마을 주민의 슬프디 슬픈 이별 장면이 트라우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픔이 80년 5·18 당시 도청앞 상무관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관과 거대한 장례 행렬과 어찌 비할 바 있겠는가.

어떤 이는 노벨문학상이 편향됐다고 했다. 이는 5·18과 제주4·3을 부인하는 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곡·폄훼하는 이유는 노벨상 수상 자체를 인정하기 싫기 때문일 터다. 어떤 이는 이번 수상을 겨냥해 ‘번역의 승리일 뿐’이라고 했다. 참 요상한 논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한국인들이 더 앞장서서 반대 로비를 했다고 했을 때도 그때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다.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같은 인종들이 있다는 데 허탈한 마음 뿐이다.

5·18에 대한 왜곡 역시 여전히 진행중 임을 직시해야겠다.



여전한 노벨문학상 폄훼자들 ‘안타까움’

또 다른 이는 “5·18때 북한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기가막힌 언어도단이다. 북한과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누가 책임져야 했을까. 5·17일 비상게엄을 전국으로 확대할 때 전두환 신군부가 내세웠던 주장이 ‘북한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북한 개입을 못막았다면 그 책임은 전두환 신군부가 져야할 일 아닌가. 광주시민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도 논리적 모순일 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분탕질 하는 자들 때문에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준 이는 페북 친구로 소통하는 대학교 과선배의 페북 글이다.

“동창 녀석과 한참동안 논쟁적 통화를 했다. 키도 내가 더 크고 머리숱도 내가 더 많고 피부도 내가 더 깨끗하고 치열도 내가 더 고르고…. 어딜 대봐도 내가 더 위에 있지만, 오늘은 이 녀석 고향이 ‘장흥’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가 기를 펴지 못했다. 분하다. ㅠ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엔 문인 출신 기록관장이 골랐다는 글귀가 현수막으로 내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옛도청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적극 활용돼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기다리던 소년’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