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전매광장
화요세평
열린세상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중독사회
데스크칼럼-이연수(경제부장)

2023. 03.28. 16:58:22

또 날밤을 샜다. 가볍게 유튜브 쇼츠 몇 편 본다는 것이 SNS 기웃거리기로 이어졌고, 그러다가 날이 밝았다. 전날 오후 늦게 카페인을 섭취한 것도 아닌데, 밤새 다른 종류의 ‘카페인’에 빠져버린 것이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무분별하게 정보를 받아들이기 쉽고 과몰입하면 우울증에 박탈감, 불면증과 초조함의 증상을 겪는다는 그 중독성 강한 카.페.인.

현대는 중독사회다. 커피, 알콜, 니코틴, 성형, 명품, SNS 등 습관이 빚은 다양한 중독 양상을 쉽게 본다. 잘 나가던 연예인의 마약 중독, 며칠을 굶어도 자신이 배고픈 것도 모른다는 도박 중독, 현실과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게임 중독, 끝없는 소비욕구를 부르는 쇼핑 중독 등 병적인 중독 요인들이 얼마든지 넘쳐난다.

미국 노스플로리다 대학의 데이비드 코트라이트 교수는 책 ‘중독의 시대’에서 현대사회 중독의 이유를 ‘변연계 자본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변연계는 사람의 뇌 중추 가운데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다. 변연계 자본주의는 뇌에 단발적인 강력한 쾌락을 주어 파괴적인 나쁜 습관을 만드는 제품이 사회에 만연하고, 이러한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중독에 빠져버린 사회의 말로(末路)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편에 중독되어 나라가 휘청거렸던 청나라의 아편전쟁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은 영국으로부터 청나라에 밀수입된 아편 중독자들이 늘어나며 촉발됐다. 청의 무기력한 패배로 끝났지만 아편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중국은 현재까지도 마약과 관련된 범죄만큼은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커피 중독자로 일생을 보냈다. 카페인 중독으로 사망한 그가 마신 커피는 하루에 50잔 정도였으며, 평생 무려 5만 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유부녀 백작부인을 사랑했던 그는 하루 15시간 이상씩 글을 쓰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았는데 18년에 걸친 구애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지만 카페인 과다복용과 과로로 결혼 5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이탈리아의 파가니니,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18세기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 등은 도박 중독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 집착은 ‘도박꾼’, ‘죄와 벌’ 등 불후의 명작도 남겼지만 평생 삶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도박빚에 시달렸던 파가니니는 자신의 바이올린마저 빚을 갚기 위해 처분해야 했다.

현대는 24시간 스마트폰 중독의 ‘포노 사피엔스’ 시대다. 2015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휴대전화를 뜻하는 ‘포노(Phono)’와 생각·지성을 뜻하는 ‘사피엔스(Sapiens)’를 합성해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신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로 처음 정의했다. 지난해 10월 판교 카카오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혼란 사태에서 보듯 우리는 어느새 모두 포노 사피엔스가 됐다.

포노 사피엔스들이 과몰입하는 SNS는 쉽게 건강마저 위협하는 존재다. 관심받고 싶어하는 ‘관종’들이 스스로 중독되고, 보는 사람도 중독시키는 어마어마한 세상. 팔로워 수가 새로운 부(富)도 창출하는 시대이기에 SNS 중독은 경제와 무관할 수도 없어 더욱 집착을 낳는다. 실제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빅테크 기업은 일회성 판매보다는 오랜 시간 플랫폼에 머물도록 하는 중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심리적 허기에 빠진 중독사회와 중독을 판매하는 현대사회. 중독은 개인적이고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SNS에 드러난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게 되고, 반대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에 ‘좋아요’나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다. 끊임없이 인증샷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SNS를 기웃거리느라 불면증에 시달리며 일상에 집중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현상은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쟁하듯 확산된 SNS 열풍을 타고 남들의 삶을 엿보기 쉬워지면서 남들만큼 잘 살 자신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SNS에서는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만 같아도 어쩌면 현실과 괴리가 있는 가면일 뿐이거나 정신적 빈곤의 소산물일 수도 있다.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고 자조하면서도 이미 박탈감과 허무감이 한바탕 휩쓸고 간 다음이면 멘탈 회복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피폐해진 생각과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분간 ‘카페인’을 줄여 일상을 되찾아보리라.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