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전남지사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2월 초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이미 찻잔을 깨고 나와 태풍의 눈이 돼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태풍의 첫 번째 진원지는 '대혁신 호남포럼' 창립총회였다. 23일 나주종합스포츠파크 다목적 체육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규모와 열기 면에서 호남권 경제 동맹 구축과 오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창립 목표를 넘어 '호남 대망론'의 불을 지피는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영록 지사가 자리했다. 김 지사의 대권가도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올 정도였다.

대혁신 호남포럼이 출범한 배경에는 인구 경제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 현상과 영남 충청 등에 뒤지는 호남의 낙후를 극복하기 위해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호남이 웅비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굴해 정부 계획에 반영하도록 노력하면서 관련 심포지엄, 세미나, 토론회 등을 개최해 지역민 여론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공동 대표는 송하철 목포대학교 총장, 박기영 순천대학교 총장,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 등이 맡았다. 고문에는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최인기 전 장관 등 호남권 원로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만일 조기 대선이 확정돼 대선이 본격화하면 호남권 후보의 가장 든든한 싱크 탱크(think tank)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남 정치권이 총망라됐다.

이번 조기 대선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지역 내에서는 민주당의 심장이자 텃밭인 호남에서 누군가가 호남의 대표주자로 대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정희 이후 60년이 넘도록 호남은 딱 한 번, 김대중 대통령이 5년간 집권했을 뿐이었고, 그 사이 호남의 소외와 낙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부응해 김 지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정국에 변수가 워낙 많고, 민주당 내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독주 체제가 확고한 데다 호남 세력의 존재감마저 미미한 상황인지라 김 지사의 도전이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지만, 호남인의 열망을 한데 모은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더구나 재선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재선 전남지사를 지낸 그의 정치적·행정적 능력은 물론 도덕성 역시 어느 후보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호남 스스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김영록 지사의 용기 있는 도전이 호남 웅비의 마중물이 되고 대한민국 대혁신의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