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

“나는 그 무렵 시라고 믿었던 것에서 벗어난 시를 찾고 있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주 무가’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신화에 기댄 바가 적지 않고, 수메르, 인도, 북유럽의 신화 등 오래된 기록들을 찾아 읽었다. 시어의 확장을 꿈꿨다. 반면에 1부와 4부의 시들은 언어를 최소화하려 고민하고 썼던 시들이다. 말을 줄이고 음악만 남은 시를 쓸 수는 없을까? 그 문제를 오래 고민했다. 말하지 않는 시, 듣는 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동그라미’ 시인의 말 중에서)

장흥 출신 이대흠 시인이 시집 ‘동그라미’(문학들)를 출간했다.

남도의 정서를 살린 이번 시집은 기존 절판된 시집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집을 다시 펴내는 복간본 성격을 띠고 있다. 시인의 제2시집 ‘상처가 나를 살린다’(2001)와 제3시집 ‘물속의 불’(2007)에서 골라 엮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동그라미’는 그의 시 중 교과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시다.

첫 시집의 제목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라는 구절은 양가적이다.

이대흠 시인은 “눈물에서는 여성성이, 고래에서는 남성성이 혼재한다. 이번 시집을 읽고 나면 이 제목이 왜 필연으로 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 이후 제3시집에 이르는 시인의 시적 경향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언어를 조탁하고 압축해 노래에 이르게 하는 서정시의 묘미가 먼저 돋보인다. ‘ㄹ’을 활용해 강물과 아버지와 전라도, 자연·인간·삶의 터전을 하나의 가락으로 노래한 ‘남도’, 북소리와 춤을 통해 흐름과 멈춤 곧 삶의 절정의 순간이나 지점을 노래한 ‘춤꾼 이씨’ 등에서 느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신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1980년 광주 ‘오월’의 아픔 곧 현실(역사)에 대한 시의 대응력을 탐색하는 시들이다. ‘물속의 불’ 장시와 ‘지나 공주’ 연작에서는 신화적 상상력과 어머니(누이)로 표현되는 모성(여성성)의 프리즘으로 현실 세계의 모순을 해석한다. 다소 실험적인 시도로 읽히는 이번 시집에서는 읽기 편하게 제목을 달고 분리해 제2부와 제3부에 담았다.

제1부와 제4부에는 ‘언어를 최소화하려 고민하고 썼던 시’, ‘말을 줄이고 음악만 남은 시’들이 실려 있다.

이대흠 시인은 1994년 ‘창작과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를 통해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남성적 톤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라도 입말의 특장, 남도만의 유장한 가락을 살린 빼어난 서정시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출간 시집으로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를 비롯해 ‘상처가 나를 살린다’, ‘물속의 불’, ‘귀가 서럽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코끼리가 쏟아진다’가 있다. 이대흠 시인은 천상병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